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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박영수 특검에 의해 반헌법적인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의 전모가 드러나고,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구속되었다.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 등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심사에 개입해 19명의 후보자가 예술위 책임심의위원 선정에서 배제되도록 했다고 특검이 지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됐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전반에서는 아직도 블랙리스트 실행의 주역들이 뻔뻔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누구보다도 박명진 예술위 위원장이다.

특검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 지금까지 드러난 총 355건의 지원배제 건수 중 예술위의 지원배제 건수가 325건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한편 문체부 대외비 문건에는 예술위가 “서울연극협회 등 편향단체가 관행적으로 지원받는 사업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통해 지원차단 조치”, “일부 사업 양해 조치로 예술현장의 특정 편향 의심 불식 및 문제 제기 명분 상실 효과” 등의 블랙리스트 실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블랙리스트를 꼼꼼하게 적용하다 보니 “실제 지원할 수 있는 대상도 점점 줄어들어 현재의 공모시스템에 한계”가 왔다고 자체 판단하고, ‘공연예술발표 공간지원사업’의 경우에는 아예 사업 자체를 폐지하는가 하면 불용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들을 급조하기도 했다.

‘2015 창작산실’ 지원사업에서 박근형 작·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배제하기 위해 예술위 직원들이 직접 박근형씨를 찾아가 포기각서를 받아내는가 하면, 극단 대표가 행정 시스템에 직접 입력해야 할 포기신청을 예술위 직원들이 조작해서 입력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직원들이 나서서 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2015 아르코 창작기금’ 심의에서는 명백히 박 위원장 주재하의 예술위에서 32명의 작가들을 무더기로 배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도종환 의원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한 당시 예술위 회의록에 의하면 박 위원장이 블랙리스트에 의한 검열 사태를 명백히 인지하고 이에 적극 협조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박 위원장은 2015년과 2016년의 국정감사에서 연거푸 거짓 증언을 하고, 심지어 조작된 회의록을 제출하기도 했다.

예술위는 지난 2월23일에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하였으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형식적인 사과에 그쳤다. 이에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문화예술계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으며,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광장극장 블랙텐트’ 앞에서는 연일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예술인들의 릴레이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서 예술위의 각종 지원제도는 변질되고 왜곡되고 기형화되었다. 심의위원 선정방식마저 블랙리스트 실행에 용이하도록 교묘히 짜맞춰졌다. 그 와중에 소위 ‘화이트리스트’에 속하는 개인 및 단체가 집중 지원을 받는 파행을 빚었다. 이처럼 지난 4년 동안 심각하게 뒤틀린 지원제도는 블랙리스트 실행의 주체인 박 위원장의 사퇴가 선행되지 않으면 제대로 개선될 수 없다. 아니, 제도의 개선을 논하기에 앞서 박 위원장이 내려오지 않고서는 예술위 내부의 철저한 진상규명조차 이뤄지기 어렵다.

특검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는 연간 2000억원 규모의 문예기금 등 국가문화 보조금을 정파적 지지자에게만 공급해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소비자인 국민에게도 피해를 입혔다”고 적시했다. 박 위원장이 그동안 예술인들을 능멸하고 모욕한 것도 모자라 그 알량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다. 박 위원장은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고 즉각 사퇴하라!

김미도 | 연극평론가·서울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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