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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엄중한 역사적 기로에 섰다. 정도냐 사도냐, 진보냐 퇴보냐의 갈림길이다. 해방 후 오늘의 상황보다 더 절박했던 시절 김구 선생은 말했다.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원칙 없는 정치, 일하지 않은 부, 양심 없는 쾌락, 격을 잃은 지식, 도의 없는 상거래, 인간성 잃은 과학, 희생 없는 신앙(마하트마 간디 ‘7가지 대죄목’)이 오늘의 한국사회를 총체적인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하수인들이 자리한다.

공자가 노나라 재상일 때 ‘용서할 수 없는 5악의 인물’이라 하여 한 사람을 처형한 적이 있다. 인의와 덕치를 주장해온 그로서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5악 인물’은 첫째, 만사에 빈틈이 없고 시치미를 딱 떼고 음흉하게 나쁜 짓만 저지른다. 둘째, 하는 일이 조금도 공정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공정한 체 강직한 체한다. 셋째, 거짓말투성이면서 구변이 좋아 그럴싸하게 사탕발림을 한다. 넷째, 성품은 흉악한데 기억력이 좋고 박학다식하다. 다섯째, 독직과 부정을 일삼으면서 한편으로는 일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너그럽고 청렴한 체한다. 그동안 이런 인물들이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을 하루 앞둔 9일 밤 청와대 건물들이 불이 꺼진 채 어둠 속에 싸여 있다. 서성일 기자

이명박근혜 9년 동안 나라가 온통 거덜났다. 그럼에도 책임감은커녕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정상배와 법꾸라지, 선동가들을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고 시대를 역류시키려 한다. 공공연하게 내란을 선동하고 테러를 공언한다. 국회 해산과 계엄령 선포를 요구한다. 야당이나 재야에서 이랬다면 검찰이 침묵했을까.

“정의 없는 권력은 강도집단”(플라톤)이란 말이 실감나는 계절이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한 3월1일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을 누비는 집단, 박근혜를 가리켜 헌정사상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라는 법비(法匪)와 풍각쟁이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게 부끄럽다.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자 하수인들이 아무리 혹세무민해도 절대다수의 국민은 역사의 정도를 걷는다. 정부의 갖은 수단에도 국정교과서를 완벽하게 거부하는 국민이다. 혹한에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과 동원된 사람들의 시대정신은 다르다. 깨어있는 시민이 존재하기에 역사는 전진한다.

격동기에 역사의 물꼬를 돌리는 위치에 있는 인물들의 책무는 막중하다. 이 길이냐 저 길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은 배가 된다. 을사늑약 당시 조정대신들의 고민은 컸을 것이다.

역사의 길을 택한 민영환은 영원히 살고 현실의 길을 취한 5적은 매국적으로 죽었다. 동학의 정도를 택한 손병희는 역사인물이 되고 사도를 취한 이용구는 타매의 대상이다. 정도를 걷는 신채호는 민족사관의 대명사가 되고 사도를 택한 최남선은 훼절의 오욕이 따른다. 청렴 강직했던 김홍섭은 ‘사도법관’이 되고 조봉암에게 사형을 선고한 김갑수 등은 ‘사법살인’의 오명을 벗지 못한다.

인간의 수명은 짧고 역사는 길다. 짧은 생애를 권부를 좇다가 역사에 오명을 남긴 인물이 적지 않다. 역사를 우습게 아는 지도층 인사들이 너무 많다. 동양에서 역사는 그물에 비유돼 왔다. 하늘의 그물 즉 천망이라는 뜻이다. 노자는 “천망이 비록 촘촘하지는 못하나 결코 놓치지는 않는다”고 하고, 미국의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는 “신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 그러나 그 물레방아는 짙게 갈아나간다”고 말한다. 현실에 집착하여 역사를 외면하면 언젠가 그물코에 걸린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날이다. 여덟 분의 결정을 국민과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 이 시점에 백범의 ‘정도냐 사도냐’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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