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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저녁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택 앞에 기다리고 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 지지자들과 밝은 얼굴로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에게선 사죄나 반성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모든 결과를 안고 가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했다. 직접 발표한 것도 아니다.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4줄짜리 메시지가 전부다. 사실상 파면 결정에 불복하고 앞으로 치열한 법적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응답이다. 마치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반란수괴 수사에 반발했던 ‘골목 성명’을 떠오르게 한다.

잠시나마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분열과 갈등을 끝내는 승복 선언을 기대했던 게 무참할 정도다.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을 겪은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다시 촛불과 헌재에 맞서겠다는 반헌법적·반법치적·반민주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재직 시에도 시민과 맞서 싸우더니, 시민에 의해 파직당하고서도 끝까지 버티겠다는 오만방자한 태도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헌재가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입증한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언행을 보면 새로운 갈등,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행태가 조기 대선 정국과 맞물려 증폭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짐작할 수도 없다. 탄핵에 반대해온 지지자들은 헌법재판관을 ‘반역 세력’으로 지칭하며 도 넘은 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 중 3명이 숨지고, 집회 때마다 폭력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다 정말 큰 불상사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헌재 최후변론 서면진술에서 “어떠한 상황이 오든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간 대국민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번이 어겼지만, 이마저 허언(虛言)이었던 것이다. 한때나마 최고 지도자로서 지지자들의 울분을 달래고 더 이상의 분열과 혼돈이 없도록 진정시키기는커녕 헌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 합법적 결정에 불복하는 것은 최소한의 양식조차 갖추지 못한 몰상식, 몰염치한 처신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책임을 따지자면 누구보다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이 크다. 자신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법치를 존중한다는 승복 선언을 통해 결자해지(結者解之)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애국의 기회도 외면하고 말았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 야당 의원 시절 헌재의 주요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헌재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라며 누구보다 헌재 결정 존중을 강조해온 바 있다. 그랬던 그가 마지막 떠나는 길까지 자기를 부정하고 헌법을 모독하고 시민의 기대에 먹칠을 했다.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국정을 맡긴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도 지키지 않았다. 참담할 뿐이다.

이제는 다른 길이 없다. 검찰은 당장 모든 방법을 동원해 ‘민간인 박근혜’에 대해 철저히 수사를 해야 한다. 끝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범법자에겐 법의 준엄한 심판밖에 없다. 시민을 능멸한 그는 자신의 집에서 편하게 쉴 자격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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