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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가득한 밤 9시. 필자는 탄자니아 북부 도시인 시니앙가주 키샤푸군 마을 한 곳에 서 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한 조각 불빛을 따라간 곳은 이 마을의 유일한 보건지소였다. 불빛과 가까워질수록 내 몸을 둘러싸기 시작한 날벌레와 모기떼를 헤치고 필자는 보건지소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호롱불과 빗물을 모아 놓은 플라스틱 물통, 소독이 되지 않은 낡은 의료장비, 급박해 보이는 의료인들 사이에서 20세의 젊은 산모 조이스가 무려 9시간의 산고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속 피비린내가 더 이상 역겹게 느껴지지 않을 그때,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물통에 담긴 빗물로 아이를 씻기고, 걸레 조각처럼 생긴 천으로 아이를 곱게 싸서 엄마에게 안겨주는 순간, 이런 곳에서도 생명 탄생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출처: 경향신문DB

필자가 살고 있는 탄자니아는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으로 출산율이 2013년 기준 5.2명이다. 세계에서 12번째로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지만, 산모 사망률 또한 세계 5위에 달해 매년 추정되는 산모 사망자 수만 약 1만3000명에 달한다. 2015년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탄자니아에서는 인구 10만명당 398명의 산모가 출산 중 목숨을 잃고, 신생아는 1000명당 18.8명이 목숨을 잃는다. 동일한 기준에서 11명의 산모와 1.6명의 신생아가 목숨을 잃는 한국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2015년부터 4년간 탄자니아 시니앙가주 키샤푸군에서 ‘모성보건증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키샤푸군에 있는 병원 1곳, 헬스센터 4곳, 마을 보건지소 44곳을 대상으로 ‘모자보건 서비스 역량 강화사업’ ‘모자보건 시설 및 장비 개선사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내 모성보건 서비스에 대한 인식 및 이용 가능성이 향상되었다. 또한 2017년 2월부터는 키샤푸군 병원에서 부족한 의료기술, 의료시설, 의료장비 등으로 시도할 수 없었던 제왕절개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출산은 여성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특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탄자니아를 포함한 빈곤국가 여성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출산을 통한 생명 탄생의 축복을 동등하게 누리기를 희망한다. 더 이상 출산 중 목숨을 잃는 산모와 신생아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수연 | 굿네이버스 탄자니아 지부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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