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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대통령 담화로 윤곽이 드러난,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정부의 구상은 ‘디지털화’와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요약된다. 코로나19 극복에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와 높은 시민의식이 강조되었음을 상기해보면, 그 내용은 지나치게 경제·산업 일변도였다. ‘사회적’ 측면이 증발했다는 것이다.
우선 ‘뉴딜’의 관점이 경제주의적이다. 그것은 1930년대 자본주의에서 초래된 위기가 경제공황 하나로만 알려졌던 시대의 산물이다. 코로나19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코로나19라는 생물학적 재난 역시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위기다. 그렇다면 코로나19와 현대 자본주의의 관계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한국판 뉴딜’에서 규정하는 코로나19는 비대면 산업의 확충(‘디지털화’)을 요구하는 경제적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세계화된 시장경제에 기초한 삶이 경제공황 외에도 생물학적 참사를 유발했다는 사실 자체에 우선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인수공통 감염병의 잦은 발병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없이 발생한 가축 전염병과도 관련하여, 사회 또는 산업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런 분야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국내에서 코로나19는 신천지와 같은 시민사회 사각지대의 존재, 집단적 돌봄 및 요양 기관의 취약성, 아파도 출근해야 하는 권위주의 조직문화,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맞벌이 부부의 자녀 교육 및 돌봄 문제, 사립유치원의 이용료 반환 문제, 성소수자에 대한 언론의 노이즈마케팅,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둔감함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을 음지에서 꺼내 부각시켰다. 이것은 사회에서 숨겨지고 억압된 문제를 시민사회의 참여를 통해 해결하는 문제, 돌봄과 요양 부문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 및 인력·지원 강화 문제, 노동과 정보에서의 인권 강화, 자녀 돌봄 및 아동교육의 질적 강화 등에 대한 고민을 숙고하도록 한다. 이런 사회적 측면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논의되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에는 현대사회와 코로나19 간의 또 다른 관계를 드러냈다. 마스크나 의료용품 생산 및 제조업 부품산업의 외주화로 균형을 잃은 경제구조, 신자유주의적 공공의료 축소와 공공의료보험의 미비, 만성화한 간호 및 돌봄 인력 부족 등으로 야기된 의료체계 붕괴의 공포,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변화한 삶과 열악한 노동 및 주거 조건 등은 감염병에 대한 ‘선진국’의 취약성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키웠다. 특히 세계 최고의 의료 지식 및 정보기술(IT) 전문기업이 포진한 미국이 현재 최대 위험국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은 기술과 산업 발전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디지털화 등의 ‘기술적’ 해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그것이 어떤 사회관계 속에 구현되는가이다. 특히 공공성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기술 발전의 성과를 판가름한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한국판 뉴딜’이 공공의료나 교육 및 돌봄의 공공성 확대를 통해서만 미래지향적일 수 있음을, 그리고 사회간접자본(SOC)이 디지털화뿐 아니라 돌봄과 사회적·생태적 안전 분야에도 확충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코로나19 난국 극복에 기여한 배달산업이 만들어낸 쓰레기 문제 해결 등 정부가 연구하고 지원해야 할 분야는 많다.
<홍찬숙 |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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