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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폭설로 난리를 치렀다. 도로가 막히고 교통이 끊겼으며, 교통사고에 온종일 난리였다. 겨우 5㎝도 안되는 눈 때문에 이런 난리를 겪다니.

학업과 업무상 눈 많이 쏟아지기로 소문난 미국 미시간주에서 5년, 워싱턴에서 2년을 보낸 경험과 비교해볼 때 엊그제 내린 눈은 폭설 축에도 끼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눈이 오면 보통 30㎝, 어떨 때는 1m쯤 올 때도 있다.

하지만 눈이 그렇게 내려도 보통은 별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밤새 눈이 퍼부어도 아침에 출근하다보면 웬만한 도로의 눈은 치워져 있고 보행자 도로도 사람이 다닐 정도의 모습은 유지하고 있다. 오후가 되면 거의 모든 도로는 정상의 상태로 돌아온다. 미끄러운 구간도 거의 없고 햇빛이라도 나면 도로에 물기조차 없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며 대설경보가 발령된 20일 강원도 속초 시내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들이 도로에 뒤엉켜 있다. 연합뉴스

무슨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눈이 내린 후에 대응하지만 그곳은 눈이 내리기 전부터 대응한다.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면, 전날부터 제설차가 곳곳에 배치되어 작업에 들어간다. 미끄러운 곳에는 미리 염화칼슘을 뿌리고 눈이 날리기 시작하면 쌓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치워버리거나 물로 녹여 흘려보낸다. 눈이 도로에 쌓이지 않으니 얼지도 않고 차가 미끄러지는 일도 별로 없다. 눈이 내리기 전부터 대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눈 치우는 일은 전문적인 영역으로서 엄연한 직업으로 취급된다. 우리는 비상근무로 공무원을 소집하여 삽이나 빗자루를 쥐여 주지만 그곳에서는 눈 치우는 회사가 있어 크고 작은 각종 기계들을 동원하여 눈을 치운다. 도로나 주차장 등 공공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아파트들도 이들과 계약하여 눈을 치운다. 직업인답게 책임감을 갖고 효율적으로 눈을 치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무리 많은 눈이 와도 금방 치워지고 도로가 제 기능을 찾는 것이다. 출퇴근의 유연성도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다. 폭설이 논란이 되는 것은 대개 출퇴근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임시휴일, 출근시간 늦추기, 재택근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폭설에 대응한다. 상황에 따라 출근시간을 1~2시간 늦추며, 심각한 어려움이 예상될 때는 임시휴일로 지정해 직장 문을 아예 닫아버리거나 재택근무를 권장하여 회사에 나오지 않도록 한다.

이런 것들은 국무회의니 뭐니 복잡한 절차 따르지 않고 쉽게 결정된다. 눈보라 뚫고서 출근해서 얻는 이익보다 출근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1년에 5~10차례 발생한다. 우리가 폭설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대처방안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면 그 피해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성낙문 | 한국교통연구원 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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