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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추리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대표 소설인 <셜록 홈스> 시리즈 가운데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보면 배경에 습지가 등장한다. 명탐정 홈스가 등장하는 작품 중 최고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바스커빌 경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그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저주인 거대한 개를 본 충격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홈스가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바스커빌 가문의 영지는 안개 낀 음침한 황야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엔 그림펜 늪이라는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는 습지까지 있다. 소설이 묘사하는 습지는 차갑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며 독자들에게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는 어딘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띤 바스커빌 저택, 이 저택을 둘러싼 안개 낀 음산한 황야를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로 습지를 동원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습지는 그렇지 않다. 생태계를 보전하고 자연재해를 줄여주는 습지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산하 재해 저감을 위한 국제전략기구(UNISDR)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4년까지 홍수, 가뭄, 태풍 등 물과 관련된 재해로 인해 전 세계가 3조300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최소 25조달러에 달할 것이라 경고했다.

세계 각국에서는 자연재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댐을 만들고, 방파제와 제방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연재해를 줄이려는 인위적 노력과는 별개로, 자연은 급격한 변화에 대해 스스로 회복하는 자정능력이 있다. 자정능력의 대표적인 사례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습지다.

습지는 말 그대로 ‘축축(濕)한 땅(地)’이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 사무국에 따르면 습지는 세계 육지 면적의 6%를 차지한다고 한다. 습지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살며, 생물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외에도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고정시켜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고,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를 줄여주는 역할도 한다.

습지의 온실가스 저감효과에 관한 전문가들의 연구결과 등에 의하면 수생식물이 사는 습지 1㎡는 연간 약 3.6㎏의 이산화탄소를 흡수 고정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전 세계 습지에 저장되어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인류가 70년간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과 같은 50조t 규모라고 한다. 이처럼 습지가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엄청나게 크다.

습지가 이처럼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 고정할 수 있는 것은 ‘이탄(泥炭)층’이라는 스펀지 같은 토양이 탄소저장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탄층이 잘 발달된 습지가 있다. 해발 1280m에 위치한 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이다. 이곳은 1997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는데, 습지 전문가들은 5000여년 전부터 형성되어 온 두께 1m의 이탄층이 습지 전체에 있다고 한다.

습지는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한 새로운 친환경 대책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하천변의 습지는 우기나 홍수 때 수분을 저장하였다가 건기에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처럼 여름철에 강우가 집중되는 나라에서는 하천변 습지가 홍수 예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방재학회지에 게재된 2014년 논문 중 습지의 홍수 저감효과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다. 경기도 목감천 일대에 인공습지를 조성하는 모의실험을 한 결과, 홍수 물의 높이가 최대 81㎝, 평균 1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람이 시작되는 물 높이가 50㎝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인공습지를 조성할 경우 199만4000㎡의 범람 면적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람사르 협약 사무국은 1971년 협약이 체결된 2월2일을 ‘세계 습지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올해 세계 습지의 날 주제는 ‘자연재해를 줄여주는 습지(Wetlands, Our natural safeguard against disasters)’이다. 습지가 가지고 있는 자연재해 저감효과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세계 습지의 날을 계기로 생물다양성의 증진뿐 아니라, 자연재해 저감에도 기여하는 습지의 중요성과 가치를 돌아보았으면 한다.

조경규 |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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