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2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3월13일 이전에 있을 거란 예상과 탄핵 최종 결정이 내려진 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적폐를 어떻게 청산할지의 문제와 함께 어떻게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필자의 지도학생이 단체 채팅방에 이런 의견을 올렸다. 불출마 선언을 한 박원순 시장과 반기문 전 총장 외에 다른 예비후보들에게서는 기후변화 관련 공약이 제시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을 때 관련 정책이 공약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후변화정책이 우리 사회에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갖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후변화로 재산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본질적으로 우리 삶의 조건이 바뀌면서 일자리에도 영향이 미치겠지만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잘 드러나거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정치인들이 굳이 의제화하려 들지 않는다. 환경부가 의뢰해서 실시한 2013년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응답자들이 94%에 달했다. 하지만 통계청의 201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불안하다고 느끼는 정도(62.9%)는 당장 체감되는 황사·미세먼지(77.9%)나 유해화학물질·방사능(68.1%)에 비해 낮았다. 게다가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2014년 국민인식조사 결과, 환경문제를 우려되는 순서대로 나열할 경우 기후변화는 8위에 그쳤다. 그러니 대선 공약으로 의제화하기에 한계가 없지 않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지난 1월19일부터 매주 방영하고 있는 8부작 다큐멘터리 <기후변화: 위기의 시대> 시즌2(원제는 ‘Years of Living Dangerously’이다)를 보라. 세계 곳곳에서, 삶의 여러 영역에서, 기후변화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어떤 위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생생히 알 수 있다. 시즌1은 9부작으로 2014년 방영 후 유튜브에 올려져 있다. 전 세계 영화사에서 매출 순위 1위인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과 함께 제작 감독을 맡은 거작이다.

기후변화로 이미 세계 곳곳에서 강제 이주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2009년 이후로는 기상 변화로 인한 강제이주민이 전체 강제 이주민의 90%를 넘어섰다. 최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시리아 난민의 경우 겉보기에는 정치 분쟁이나 종교 갈등의 결과 같지만 사실은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이다. 1988년부터 2012년 사이 14년간 지속되었던 가뭄은 900년 만의 극심한 가뭄으로 시리아의 사회시스템을 붕괴시켜 버렸다. 시리아 난민은 비단 유럽이나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리아 국적 난민 신청자가 네 번째로 많다.

유세기간 중 기후변화에 부정적 시각을 보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국제 기후변화 대응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당선 이후 트럼프는 파리협정 탈퇴 의견을 재고할 수 있으며 파리협정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보다 열린 자세를 보이겠다고 밝혔다. ‘반이민·난민’ 행정명령 이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테슬라, 우버 등 미국 굴지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글로벌 경제 기반을 무너뜨린다며 행정부를 비난하면서 테러위험국으로 지정된 7개국 출신 직원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트럼프의 이민정책이 그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기후변화정책 또한 마찬가지다. 기후변화가, 파리협정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 확실히 예상되기에 보다 철저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선 예비후보들이 안전과 생명, 지속가능성을 지켜주는 기후변화 대응 공약을 제시하도록 우리 시민이 먼저 관심을 갖도록 하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