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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기록적인 폭염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가 갈라져 솟아오르는가 하면 베란다에 내다놓은 달걀이 부화되어 병아리가 태어나기도 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가 폭염도 자연재난으로 대처하라”고 했다. 지자체와 정부 기관들도 폭염에 대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예전처럼 “무더위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극복하자!”고 외치기가 무색하다. 정부가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일상적인 생활 속 시민 안전을 외치기 전에 산업현장에 대한 긴급점검을 주문하고 싶다. 특히 발전소, 제철소, 석유화학단지, 유해성 물질 제조공장, 건설현장, 조선소 등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는 위험한 국가 기간산업 단지들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노후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위험한 파이프 배관들은 기온이 올라가면 언제든지 폭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자칫 한 도시가 마비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또한 폭염에 대한 지자체의 대책과 정부 대책들이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산업현장에서는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살펴야 한다.

폭염이 지속된 5일 한강 물총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 난지한강시민공원 물놀이장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폭염에 가장 곤혹스러운 업종은 수주산업인 조선소 및 건설현장들이다. 정해진 기일이 있으므로 속도전 공사 관행이 일상화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일용직 형태다 보니 일을 못하면 생계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계속되는 폭염에 대한 정부 대책 발표에 현장들이 생색내기식으로 급조한 그늘막 휴게실은 근무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단속 및 점검 대비용일 뿐이다. 이마저도 협소한 소규모 공사현장들은 꿈같은 얘기다. 공사장 지하층은 휴게실 대신 각종 자재들로 꽉 채워져 있다. 철판을 많이 사용하는 조선소 및 밀폐공간 작업장,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많은 건설현장, 아스팔트와 보도블록 공사장은 평균 기온이 5~10도 더 높다. 여기에 더 힘든 노동 강도가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이하 규칙 등)을 보면 휴식 및 휴게 시설 설치, 소금과 음료수 등의 비치 등을 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24조).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무색하게 처벌과 단속 실적은 전무하다.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가 현실화되게 하기 위한 세부적인 강행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공사금액별, 작업인원별 휴게공간 설치 규정 등 세세한 기준들이 필요하다. 아울러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들을 하청에 전가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폭염 시 휴게시간 보장이다. 최근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보면 무더운 낮시간에 1~2시간 더 휴게시간을 보장해 주는 대신 연장근무를 강요하는가 하면, 오전 근무만 시키고 오후엔 귀가 조치를 한다. 물론 일당은 반나절치만 지급한다. 그나마 일부 노조가 있는 현장들은 조출을 통해 임금을 보전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모두가 휴게시간 없이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급 휴게시간 보장은 꿈같은 얘기다.

보다 현실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공사 발주 단계에서 사업주의 악천후에 대한 보건조치를 명시하여 설계가에 반영토록 해야 한다. 둘째,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산업안전에 대한 근로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셋째, 각 공사비별, 출력인원별 충분한 휴게시설 면적 등 세부지침이 나와야 한다. 넷째, 산업현장은 노동 강도가 더 높으므로 기상청 폭염경보 기준을 분리 적용해야 한다. 참고로 29도만 넘어가도 휴게시간을 30분 더 보장하는 대형 조선소도 있다. 다섯째, 폭염도 자연재난이라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폭염, 한파, 미세먼지 등 산업안전 측면에서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정부와 사업주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인력도 자산이다.

<박종국  경실련 시민안전 감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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