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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어서 딱 하나 좋은 건 모기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느 해보다 농작물 병해충도 덜하면 좋을 텐데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있다. 이름은 예쁘지만 행실은 못된 미국선녀벌레는 포도, 감, 복숭아 나무에 붙어 수액을 빨아먹고 나무를 바짝 말려놓는다. 기록적인 폭염에 선녀벌레나 꽃매미 같은 돌발외래해충의 창궐 가능성이 높아 방제당국이 드론 방제를 하는 중이다. 먹거리의 세계화는 해충과 동물 전염병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1년 전 살충제 계란 사태가 휩쓸고 간 뒤 ‘비펜트린’ ‘피프로닐’ 같은 어려운 화학용어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비펜트린 성분의 경우 양계에도 허용된 살충제이고, 농업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다이다이’ ‘직격탄’ 같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제초제 이름 중에는 ‘풀초상’이나 ‘확타’ 같은 이름들이 유난히 많다. 복잡한 화학용어 대신에 농약 소비자인 고령의 농민들이 용도를 쉽게 알아보고 기억하기 쉽도록 이름을 짓는다.

농약은 현대 농업의 필요악이다.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량을 늘려 농산물 가격을 낮게 유지시키지만 그 대가도 크다. 토양과 하천 오염, 생산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소비자들의 농약에 대한 만성적인 불안도 있다. 농약은 병해충 방제부터 종자와 토양 소독, 생육의 촉진과 억제, 착색까지 농사 전반에 쓰인다. 텃밭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농약과 비료 없이 농사 짓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미한 일. 벌레 먹고 못생기고 크기도 작은 수확물이 그 실체다. 하지만 시장에 내어놓는 농산물이야 상품이니 그럴 수 없다. 당연히 농약과 비료의 힘을 빌려야만 한다. 싼값에 예쁜 걸 먹자면 그렇다.

농약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높아지자 정부는 농약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 이른바 PLS(Positive List System)를 2019년 1월1일부터 시행하겠다고 생산자들에게 통보했다. PLS는 벼, 토마토, 고추 등 작목별 등록 농약만을 사용해야 한다. 해당 작물에 등록되지 않은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을 1㎏당 일률적으로 0.01ppm까지만 허용한다. 0.01ppm은 국제표준 수영장에 잉크를 한 스푼 반을 희석한 양이다. 문제는 실제로 농약을 다뤄야 하는 농민들이 아직 숙지도 하지 못한 상태인 데다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농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윤작과 간작을 많이 한다. 마늘에 쓰는 농약과 벼에 쓰는 농약이 다르지만 같은 논에서 기르기 때문에 약제 혼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은 면적에 심는 소수의 희귀 작물은 아직 사용이 가능한 농약 목록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인삼처럼 4년 이상 기르는 장기 재배 작물의 경우 PLS 시행 이전에 쓴 농약이 검출될 수도 있다. 또 항공방제는 필연적으로 농지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데 비의도적인 농약 검출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없다. 그래서 농민들이 준비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밀어붙이기로 한 것 같다. 권력은 소비자들에게서 나와서일까. 아무리 그래도 농약을 직접 다뤄야 하는 생산자들에 대한 대책은 너무도 미비하다. 농약잔류량 검사를 해서 농민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범죄자 만들기는 더 쉬워졌다. 농약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잔류검사에 걸려들어 친환경 인증 취소를 겪은 농민들의 사례를 들어보길 바란다. PLS는 영어로 ‘Please(제발)’의 약자이기도 하다. 정부는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 PLS!

<정은정 농촌사회연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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