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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다국적 축구대표팀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이주민 문제로 갈등을 겪는 여러 나라들에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대표팀 23명 중 21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에서 처음 우승할 때도 22명 중 12명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다. 이민자와의 갈등 치유와 사회 통합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프랑스가 이후 20년 동안 이민자 문제에서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외부인’의 문제에 관한 이성적 논의는 쉽지 않다. 전쟁과 박해를 피하려는 난민들에 대한 얘기는 고사하고 새로운 곳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평범한’ 이민자 문제도 차분하게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외국인 혐오 분위기가 커졌다. 이른바 ‘원주민 보호주의’로 물들고 있는 시대다. 이건 외부와의 싸움이 아니다. 내전이다.

서울 아주중 학생과 학부모들이 7월 19일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이란 난민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같은 학교 친구 샤이엔을 도와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2015년 여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난민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 행렬이라고 했다. 대다수는 유럽으로 갔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다. 유럽국들 중에서 난민 수용에 가장 관대했다. 독일에서 합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해도 시민권을 얻는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의 하류 인생을 산다.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시선도 곱지 않다. 매년 수백건의 이민자와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이 발생했다.

유럽 전역에서 ‘이민자 반대’ 목청을 높이는 정당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선거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독일 집권당인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은 70년간 연합해왔는데 지난달 난민을 품으려는 총리와 반대하는 내무장관이 충돌했다. 연정이 깨지기 직전 상황까지 내몰리자 총리가 입장을 굽히면서 가까스로 봉합했다. 난민 문제는 28개국이 모인 유럽연합(EU)의 지속성을 위협하는 중대 현안으로 부각됐지만 저마다 ‘우리는 안된다’는 식이어서 접점을 찾기가 힘겨워지고 있다. 인도주의적 논리들은 먹혀들지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도 난민 문제에 관해선 ‘쇄국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 1만9628명 중에서 인정된 건 20명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외국인에게 배타적이다. 보수층에서 외국인들이 흘러들어오면 치안이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본인 고용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도 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보수 정권은 예전부터 “절대로 이민 확대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던 아베가 바뀌었다. 지난 5월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전문직은 물론 단순노동직까지 사실상 개방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 4월 건설·농업·간병·조선·숙박 등 5개 분야에서 최장 5년 동안의 취업을 인정하는 새로운 체류 자격을 주기로 했다. 취업 비자로 10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 거주기간 제한을 없애고 가족들을 데려올 자격도 부여한다. 사실상 이민정책을 도입한 셈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총인구는 9년 연속 감소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2040년에는 올해 대비 1500만명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을 적극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남미 칠레도 이주자에 우호적이다. 미국과 유럽의 반이민정책 강화로 진입 문턱이 높아지자 칠레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아이티만 해도 2013년 2000여명에서 2016년 4만9000명, 지난해에는 10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세비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최근 “우리나라에 기여하고자 입국하는 이들,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고자 하는 모든 외국인에게 문이 열려 있다”고 했다. 이주자에 대한 칠레의 개방적 태도에는 노동력 부족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칠레 국민의 예상 평균수명은 80.5세다. 은퇴자 1명당 노동인구 비율은 2001년 7.6명이었는데, 2030년에는 그 절반 수준인 3.6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일본·칠레에서 이주자 문제는 정치적·인도적 논리와는 무관하다. 노령화, 그에 따른 일손 부족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견인하고 있다. 경제적 발전 수준과 민주주의의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노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2014년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이 향후 50년 동안 3% 경제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각각 5000만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추산했다.

최근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 출신 500여명은 한국도 이주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할 시기가 왔음을 보여줬다. ‘세계 공동체 시민’ 같은 거창한 얘기가 아니라 해도, 불가피한 일이라면 어떻게 공존할지 논의해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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