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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이라고 불리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내신 조작, 시험문제지 유출 등 부정행위가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인지라 당연히 나올 법한 주장이다.

학종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부자 부모를 둔 아이에게 유리하고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에게 불리하다는 점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하는 입시제도가 바로 학종이라는 것이다. 학종을 ‘사교육종합전형’이라고 규정한 칼럼도 보인다. 그러니 수능 중심으로 대학에 가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가 지나치게 서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판단의 기준이 이른바 SKY 대학으로 한정된 느낌도 없지 않다. SKY 대학 몇 명 보냈는가를 가지고 명문고 운운하는 것은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이라고 생각한다.

지방 학생들, 특히 농어촌 지역에 사는 학생들 처지에서는 학종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 보게 된다. 시골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다. 대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지만, 학교 주변에 변변한 학원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학교와 교사를 믿고 의지하게 된다.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이 더 강해진다. 그래서 교사이자 학원 선생님이자 입시컨설턴트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밤낮이 없다.

시골 고등학교 교사들은 영양가 있는 생활기록부를 고민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교육 체험의 기회를 마련하고, 응시 대학 선정을 위해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씨름한다. 성적 좋은 아이하고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밤을 새워가며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검토하고 또 추천서를 쓴다. 사실, 교사가 편하고자 하면 수능만으로 뽑는 정시가 제일이다. 학종이 가장 힘들다. 그런데도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내 아이들이 정시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골 아이들은 대개 늦공부다. 도시 아이들처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영어나 수학 등에서 다소 부족한 편이다. 대신, 학교생활을 알차게 한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의 진솔한 열정이 학종을 통해 대학의 문을 열어젖힌다. 영어, 수학이 다가 아니다.

성적만으로는 하위권 대학에 갈 학생이 학종으로 중위권 대학에 가고, 중위권 대학에 갈 학생이 상위권 대학에 갈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 바로 학종이다. 사교육 없이 그게 가능하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이렇게 원하는 대학에 간다.

소위 고교등급제를 따르는 대학 입학사정관도 있겠지만, 대개의 사정관은 그렇지 않으리라 여긴다. 맑고 밝은 눈으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제대로 된 인재를 뽑으려 애쓰고 있으리라 믿는다.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학종이 공교육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순기능도 갖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사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뀐들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절대악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공교육은 사교육에 모든 걸 떠맡기지 말고 사교육과 경쟁한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교육을 먹는 것에 비유한다면, 학교 교육은 밥과 김치이고 학원 교육은 비타민이다. 밥 먹는 게 부실한 것 같아 비타민으로 몸을 보강할 수 있지만, 밥과 김치를 무시하고 비타민만 먹어대면 몸이 망가진다.

<이경수 | ‘나는 오늘도 선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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