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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처음으로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하면서, 높아진 한국 수학계의 위상을 증명했다고 자평했지만 엉뚱한 곳에서 혼선이 빚어졌다. ‘보도자제 요청’(엠바고) 때문이다.

엠바고는 취재대상이 취재시간 확보 등을 이유로 언론매체에 특정 시점까지 보도자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서울세계수학자대회조직위 관계자는 지난 10일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필즈상 수상자 4명을 알려줄 테니 수상자가 발표되는 13일 오전 10시30분경까지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제수학연맹은 관행적으로 수학자대회 3일 전에 필즈상 수상자를 언론매체에 미리 알려왔다고 했다. 엠바고를 깨면 국제수학연맹에서 해당 매체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11일 새벽 2시쯤 필즈상 수상자 명단과 사진을 첨부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수상자들. 왼쪽부터 아르투르 아빌라(프랑스), 만줄 바르가바(미국), 마인 헤어러(영국), 마리암 미르자카니(미국) _ 연합뉴스


문제는 그 뒤에 터졌다. 보도자료가 나온 뒤 12일 국내 일간지에 필즈상 수상자를 예측하는 기사가 실렸다.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 스탠퍼드대 마리암 미르자카니 교수가 수상이 유력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조직위로부터 이미 수상자 명단을 받았고 미르자카니 교수가 수상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본인은 부인하겠지만, 교묘한 엠바고 파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약속을 지킨 기자들 사이에서는 “도의적으로 너무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13일 오전 수상자 발표 전에 외신들이 엠바고를 깨고 기사를 내보냈다. 아침부터 해외 언론에는 수상자 기사가 흘러넘쳤지만 개최국인 한국 언론은 오전 9시16분 조직위가 “이제 기사를 내도 된다”고 밝혔을 때에야 기사를 낼 수 있었다.

이렇게 못 지켜질 엠바고라면 차라리 노벨상처럼 수상자 명단을 당일에 발표하는 것이 혼선을 줄이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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