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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3월28일자에 게재된 기고문 ‘아동음란물 정의 세분화해 양형기준 세워야’에 대한 반론을 쓰고자 한다. 기고문은 실존아동 성착취물에 대한 실제 형량이 낮은 이유로 ‘가상아동’을 대상으로 한 다수 음란물과 ‘실존아동’에 대한 성착취물이 동일하게 취급되니, 둘을 구분해 실존아동에 대한 성착취물 양형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착취물에 대한 형량 문제는 성착취물에 경각심 없는 사법체계의 관행을 고쳐야 할 문제지, 가상과 실존의 구분 문제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등으로 이뤄진 가상아동 성착취물은 온라인의 공유형태와 만나 실존아동에게 치명적 악영향을 끼친다. 온라인에서의 공유는 특정한 상황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해 콘텐츠와 관련된 인식 혹은 의식을 강화한다. 가상아동을 성적대상화하는 콘텐츠의 공유행위는 실제 피해 아동이 없어서 다행인 게 아니다. 실제 아동에 대한 성학대를 가정하는 데 쓰이며, 아동 착취를 쾌락으로 여기는 행위를 강화할 수 있어 해악을 끼친다.

‘n번방’ 사건을 보면 성착취에 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자들을 초대하여 영입했는데, 초대조건 중 하나로 ‘일본 애니메이션 여아 사진으로 프로필을 변경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비누 사용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로 아동의 누드 그림을 불투명 형태로 비누 안에 넣어 판매하기도 했다. 이렇듯 아동 성착취라는 행위에 가상아동은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실존아동을 다루는 것만이 성착취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가상아동을 다룬 음란물이 하위문화(서브컬처)로서 유행한 것은 커뮤니티 안에서만 통제가 되었기 때문이지만, 이것이 커뮤니티 밖으로 무절제하게 벗어난다면 범죄행위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음란물은 특정 소재를 감각적 쾌락수단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이기에 비판과 제한을 받아야 한다. 실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상아동을 성욕의 수단으로 삼아 쾌락의 소재로 쓰는 것이 아동의 존엄성이란 개념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명백하다.

가상아동과 실존아동을 구분하여 두 대상에 대한 처벌을 달리하자는 주장은 두 경우 다 성착취에 아동이 이용된다는 본질을 호도한다. 이렇게 양자에 대한 처벌을 구분하면 실존아동 성착취물 처벌 양형이 증가할 것이란 의견은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사회가 아동을 성인과의 성행위 상호합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아동을 다룬 음란물은 존재할 수 없다. 유엔아동인권이사회의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9월 성착취물의 규정에 가상아동과 실존아동을 같이 처리하는 권리협약 선택의정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아동포르노그래피의 제작, 배급, 수출, 전송, 수입, 의도적 보유 및 광고를 전 세계적인 범죄로 다룰 것을 강조했다.

음란물의 대상이 가상아동이냐, 실존아동이냐에 따라 형량의 기준을 달리하자는 주장은 자칫 가상아동을 실존아동 성착취의 대안으로 취급할 수 있게 하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무엇보다 법 집행자들이 가상이든 실존이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가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심각한 범죄라는 것에 대한 인식부터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남명희 | 자유기고가·<팬픽션의 이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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