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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정이 많다. 물건을 사면 뭐라도 하나 끼워준다. 최근엔 이 ‘정을 나누는 임무’를 마스크가 도맡은 것 같다.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할 때마다 마스크가 감사카드처럼 등장한다. 식당에서 서로 밥값을 계산하겠다며 카드를 1㎝라도 더 내미는 것처럼 서로 마스크를 양보하는 풍경도 종종 목격된다. 대중교통 이용 시간이 10분 더 기니까, 집에 노약자가 있으니까, 네가 운동을 더 안 하니까 등 다양한 양보의 핑계가 개발된다. 마스크는 서로 거리를 두기 위한 도구인데, 네가 더 거리를 두라며 마스크를 서로 양보하는 풍경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훈훈하다.

마스크가 일종의 자원이 된 시대에 각자 이 한정된 자원의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얼마 전부터 면 마스크를 사서 매일 빨아서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줄 서서 사 모은 KF94 마스크는 가족 중 노약자에게 가져다드렸다. 역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네가 더 필요하지 않겠냐며 도로 가져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마스크라는 사물에 점점 정이 쌓이고 사랑의 의미가 덧붙여진다. 마스크를 도로 가져가라며 내미는 손에서 시선을 떼서 둘러보니 햇볕에 소독하기 위해 이미 사용한 일회용 마스크 열 장이 집 안 여기저기 걸려 있다. 아마 다른 집들도 비슷한 풍경이리라.

날이 풀려 마스크로 인해 덥고 답답해질 만도 한데, 거리에서, 대중교통에서 모두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풍경은 당연하지 않다. 각자 애를 써야만 가능한 풍경이다. 마스크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로부터 당신이 안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타인에게 주는 배려와 예의 차원일 것이다. 단기간에 이런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함께 실천한 시절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로 가려서, 또 물리적 거리 두기로 애써서 서로 멀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노력한 만큼 더욱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진다.

<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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