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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문중원 기수의 발인식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려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렛츠런파크) 소속 조교사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ㄱ씨에게 외상 등 타살 흔적은 없었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부검 결과 ㄱ씨에 대해 타살점이 없다며 변사처리하고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 2일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개인의 극단적 선택에 의한 죽음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단순 자살로 치부하기에는 멈칫거려진다. ㄱ씨의 죽음을 놓고 노조와 시민단체가 나선 이유다.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지난해까지 기수 4명, 마필관리사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교사의 사망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29일, 7번째로 숨진 기수 문중원씨의 유서를 통해 경마장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문씨는 유서에서 7년 전에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마방배정 심사에서 번번이 떨어졌다며 마사회의 갑질과 부조리를 고발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책임을 개인마주제로 돌렸다. 개인마주제란 마주와 조교사가 위탁계약을 맺은 뒤, 조교사는 말 관리사를 고용하며 기수와 기승(騎乘)계약을 맺어 경마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피라미드형 위계 관계에 있는 조교사와 기수·마필관리사가 경마의 실질 운영자이지만, 조교사 면허 교부와 마방배정 심사권은 마사회가 갖고 있다. 

조교사 ㄱ씨는 숨지기 사흘 전인 지난달 말 문중원씨 사망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문씨보다 조교사 면허 취득이 늦었지만, 마방배정 심사는 먼저 통과했다. ㄱ씨가 문씨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경찰 조사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강압수사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현재로서 ㄱ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을 밝히긴 쉽지 않다. 하지만 경마공원 한 곳에서 8명이나 목숨을 끊은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달 9일, 문중원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100일이나 장례가 늦춰진 것은 마사회가 문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장례 이틀 뒤 마사회와 공공운수노조는 ‘사망사고 재발방지 합의서’에 공증을 했다. 합의서에는 책임자 처벌, 조교사 심사비리 근절, 과도한 경쟁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합의가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또 한 명이 숨지고, 다시 대책위가 꾸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죽음이 반복되는 것인가? 마사회가 답해야 한다. 조교사 ㄱ씨의 죽음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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