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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경력법관 채용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지원자들을 사전에 접촉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견, 노사관계에 대한 의견과 국가관 등 사실상 사상검증에 가까운 대면 면접까지 실시했다는 보도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신원조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이 말하는 근거규정은 ‘국가보안을 위해 국가에 대한 충성심·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하기 위해 신원조사를 할 수 있고, 신원조사는 국가정보원장이 직권으로 하거나 관계기관 장의 요청에 따라한다’는 내용이다.

천천히 살펴보자. 우선 판사들의 임용권은 사법부의 장인 대법원장에게 있다. 우리 헌법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3권이 분립돼 있으므로 사법부의 인사권은 오로지 사법부에 있고 다른 행정부서가 일절 관여할 수도 없으며, 관여해서도 안된다. 헌법 제104조 제3항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신원조사가 필요하더라도 다른 국가기관의 협조를 얻어 사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국정원이 개입하고 더욱이 대면 면접까지 실시할 경우 사실상 충성서약을 받는 것과 같으며, 국정원의 질문 내용을 보더라도 특정 신념을 가진 사람이 획일적으로 선발되는 위험성이 있다.

사법부의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 헌법의 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법관의 자격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고(헌법 제101조), 대법원장과 대법관, 일반법관의 임명절차, 임기, 그리고 징계처분 등도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104조 내지 106조). 사법부가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것은 물론 법관이 사법부 내에서도 독립되어 재판할 수 있도록 자격제, 임기제, 정년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헌법규정은 결국 법관이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헌법 제103조) 권한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법관 임명은 일반 공무원의 임명과 같이 다루어질 수는 없고, 보안업무규정의 적용이 필요하더라도 사법부가 그 범위를 명확히 정해서 법관 임명에 독립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관 임명에 사법부가 아닌 다른 국가기관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어서 헌법 파괴행위에 이르는 위험성이 있다.

국가정보원에서 대면 면접을 실시했다면 당연히 대법원장의 동의를 구해서 법원이 정한 장소, 그리고 법원의 관련자가 참여하는 과정에서 면접이 이루어졌어야 할 것이고, 면접 문항도 대법원과의 사전협의를 통해 헌법정신이 반영되도록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법원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포기한 것이 된다. 또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법관 후보자들은 대법원의 요청 여부를 물었어야 하고 대법원에도 그런 사실을 확인했어야 한다. 법률 전문가라면 누구나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면접에 응하고 법관에 임명됐다면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 있는 판결을 할 수 있겠는가?

새누리당 유승민·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지도부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주례회동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은 이병호 국정원장. (출처 : 경향DB)


더 심각한 것은 국가정보원이 충성심·성실성 및 신뢰성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노사문제, 세월호사고 등에 대한 시각을 물어봤다면 국가나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살펴본 것은 물론 후보자들의 이념적 성향을 파악해 임명 여부에 영향을 미치려 했음이 틀림없다.

법관의 임명은 몇 사람의 공무원 임명과는 다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처럼 중요한 사항에 대해 대법원은 철저하게 조사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관여 정도에 따라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관계자들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정범 | 법무법인 민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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