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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관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천하가 희희낙락하는 것은 모두가 이익을 위해 모였기 때문이고, 천하가 흙먼지가 일 정도로 소란스러운 것은 모두 이익을 찾아 떠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익을 좇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는 책상머리에 앉아 수염이나 만지작거리며 공허한 논쟁을 일삼는다고 유학자들을 질타했다. 그리고 축재를 옹호하면서 재물을 갖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사를 통해서라고 갈파했다. 입고 먹는 것이 다스림의 근원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가. 우리나라 특산품인 인삼은 예나 지금이나 귀중한 돈벌이 수단이다. 인삼은 수익성이 높은 만큼 인삼과 모양이 비슷한 도라지가 인삼으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부터 80여년 전의 일이다. 대전에서 삼장수가 도라지로 ‘짝퉁인삼’ 제품을 만들어 팔다가 잡혔다. 범인은 도라지를 바짝 말리고 머리 부분에는 인삼의 뇌두를 아교로 붙여 마치 인삼인 양 팔다가 붙잡혔다. 또 그 뒤에는 도라지를 인삼에 혼입한 뒤 마치 인삼제품인 것처럼 속이는가 하면 한약제품인 경옥고에 인삼성분이 들어간 것처럼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을 ‘간상배’라 부른다.

요즘엔 중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판매되지만 도라지삼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짝퉁인삼’의 바통을 ‘짝퉁백수오’가 이어받았다. ‘요강을 엎는다’는 복분자처럼 백수오(白首烏)는 마케팅의 산물이다. 한약재의 이름을 ‘흰머리가 검어진다’고 풀이하고 자양, 강장, 보혈 기능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특히 여성들에게 좋은 제품으로 퍼졌다. 백수오와 모양이 비슷한 이엽우피소는 재배기간이 짧고 가격도 백수오의 3분의 1에 불과하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소비자보호원은 지난달 건강식품으로 널리 쓰이는 백수오 대신 이물질(이엽우피소)이 들어간 제품을 적발해 발표했다. 하지만 ‘백수오 복합추출물’을 공급하는 내츄럴엔도텍은 이엽우피소를 사용한 사실을 부인했다. 그 과정에서 내츄럴엔도텍은 적어도 세 차례 거짓말을 했다. 소비자원이 발표할 때의 검사방식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공인된 방식을 무시한 것으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더 나아가 민형사상 고소를 하겠다고 했다. 이에 소비자원이 다시 반박증거를 제시하자 소비자원의 시료밀봉과정에 잘못이 있다고 되받았다. 그리고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내츄럴엔도텍은 100% 진품 백수오만을 사용한다’는 광고를 내 결백주장을 늘어놓았다. 이 와중에 시간을 벌면서 주식을 팔아치워 22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시중32개 백수오 제품의 진위 시험검사 결과 (출처 : 경향DB)


내츄럴엔도텍은 백수오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업체다. 코스닥시장에서 시가총액 10위 안에 드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소비자원의 원료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모든 기대는 무너졌고 명성은 물거품이 됐다. 내츄럴엔도텍 스스로 고객의 신뢰를 저버리면서 나락을 자초했다. 내츄럴엔도텍은 결국 잘못을 인정했지만 그것은 회사는 물론 투자자와 코스닥시장, 소비자 모두 너덜너덜해진 뒤였다. 주가는 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개미투자자들의 지옥이 됐으며 건강식품에 대한 불신은 커져 인삼과 같은 제품의 매출도 덩달아 추락했다. 건강식품의 대목인 어버이날 특수는 실종됐다. 군불을 때던 코스닥시장에 찬바람을 몰고 왔다.

실수는 용서받지만 거짓말은 응징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거짓말은 기업의 존망을 좌우한다. 1982년 미국의 제약회사 존슨&존슨의 감기약 타이레놀에 독극물이 들어가 8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는 즉시 3100만병을 모두 회수했다. 모든 폐기비용으로 약 1억달러가 들었다. 그리고 알약 형태도 캡슐로 바꾸어 이물질 혼입을 원천봉쇄했다. 이런 정직하고도 성실한 태도가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 타이레놀은 세계적인 의약품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0년 도요타자동차는 초기 부품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 230만대의 자동차를 리콜하면서 돈도 잃고 회사의 이미지도 망가졌다.

백수오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식약처는 국내 시판된 백수오 제품 가운데 5%만이 백수오가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머지 95%는 먹어도 되는지 여부도 아직 불확실하다. 침을 튀겨가며 백수오제품을 팔았던 홈쇼핑업체는 피해자 보상과 관련해 제각기 주판알을 튕기며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는 사이 불신과 함께 건강식품 시장도 시들어가고 있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말은 유효하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고,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신뢰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간상배의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박종성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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