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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건설교통부는 ‘에너지세제개편에 따른 운수업계 국고보조금 지급방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환경오염 축소, 에너지소비 절약을 위해 차량용 경유의 세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휘발유에 비해 훨씬 더 환경을 오염시키는 경유의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이 세율조정의 근거였고, 경유를 태워 영리활동을 하는 개별 운수업 종사자들의 부담 때문에 한시적으로 그 증가분에 대한 차액을 보조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단, 단계적으로 이를 축소해 2006년 이후에는 운임 조정을 통해 지급을 중단한다는 기본원칙을 덧붙였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유류 보조금’의 탄생 배경이다.

그들은 알았을까? 한번 지급된 보조금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하는데, 역대 어느 고위 관료도 그런 수난을 겪으려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임기 내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왜 내가 앞에서 싼 똥을 치워야 하느냐?’라는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2005년의 제2차 에너지세제개편에서는 ‘유류 보조금의 지급을 중단한다’는 기본원칙이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심지어 예전에는 유류세 인상분의 일부만을 반영했으나 현재는 인상분 전액을 반영해 지급단가를 산정하고 있다. 2001년 342억원대의 보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2011년에는 약 50배가 늘어난 1조5300억원이 됐다. 국가 수준에서도 매년 정기적으로 지출하기에는 적잖이 부담스러운 금액이 되었다.

유류 보조금은 개별 운수업자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화물차로 행해지는 물류행위와 연관된 모든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기업이 유류 보조금을 감안하여 운임을 깎아서 지급하기 때문이다.

유류 보조금의 직접적 수혜자는 운수업 노동자 ‘개인’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들의 월수입을 뜯어보면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제품을 만드는 제조기업(화주기업), 그 화주기업에 원자재, 부품, 반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이러한 기업들로부터 수송 의뢰를 받는 물류기업이나 운송기업이 진정한 유류 보조금의 수혜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개별 운송업자는 점점 ‘유류 보조금’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이제는 연례행사가 된 화물연대 파업에는 이러한 서러움도 일정부분 포함돼 있다.

화주기업, 물류기업, 운송업체는 유류세 증분에 걸맞은 운임을 현실화하지 않았고, 개별 운수업자들에게 “너희는 유류 보조금을 받으면 되지 않으냐”며 그 차액을 자신들의 수입에 편입시켜왔다. 자신들이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개별 화물차주에게 전가시킨 것이고, 개별 차주는 그것을 정부로부터 보상받아 왔다.

한 소비자시민모임에서 “휘발유 가격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물가 인상 불안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정부의 유류세 인하와 정유사의 가격 할인 등을 촉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로서는 돈은 돈대로 드는데 화물연대 파업은 거의 정례화되고 있으며, 정부는 그것이 두려워 유류 보조금 지급기한을 매년 연장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지출하는 돈은 개인 운전자를 거칠 뿐 궁극적으로는 기업에 고스란히 바쳐지는 꼴이 되는데 이 문제는 정부 내외부적으로 거의 제기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유류 보조금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유류 보조금이 폐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기적으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유류 보조금의 폐지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이 없이도 운임을 정상화시킬 것이며, 화주기업·물류기업·운송업체로 하여금 운송비 절감의 절실함을 느끼게 해줘 시스템 효율화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화물 운전자의 직접 고용이 창출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보조금의 폐지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이점은 화물차를 이용해 영리행위를 하는 모든 기업들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운수노동자들과 ‘함께 사는 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는 점이다.


김남석 |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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