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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어제 KBS의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에 대해 권고 결정을 내렸다. “향후 제작 과정에 유의하라”는 뜻의 경징계다. 문 전 후보가 교회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발언을 보도한 게 공정·객관성을 위반했느냐가 쟁점이다. 당초 중징계를 추진했다가 여론의 반발 탓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정이다. 하지만 공직 후보의 언론 검증에 사후검열 잣대를 들이댄 것 자체가 난센스다. 비록 징계가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방통심의위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이번 징계는 상식으로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공직자의 탈·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역할이자 책무다. 문 전 후보에 대한 검증 역시 언론의 사명에 속한다. 강연 내용을 편집 보도한 게 공정성 위반이라는 잣대는 어불성설이다. 1시간을 인터뷰했다고 전체 내용을 다 내보내는 방송을 본 적이 있는가. 편집은 언론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를 징계 운운하며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월권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보도내용을 징계하면 군사정권 시절의 보도지침이나 다를 게 뭔가.

문창극 총리 지명자 사퇴까지 국정 공백 일지 (출처 : 경향DB)


KBS의 문 전 후보자 관련 보도는 검증이 끝난 사안이다. 이를 보도한 기자는 기자협회·방송학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과 방송기자클럽의 보도상을 받았다. 언론의 소임을 다했다는 뜻에서 주는 의미 있는 상이다.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징계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간 편향보도로 논란이 된 KBS는 이 보도로 공영방송의 기능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터다. 더구나 문 전 후보자는 이 ‘문제의 발언’ 때문에 결국 중도 하차했다. 그의 사표를 수리한 청와대는 또 뭔가. 설사 중징계가 났다 해도 전례를 감안할 때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리도 없다.

요즘 언론계 돌아가는 사정을 봐도 이번 징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임명된 방송계 인사들은 친여 보수 일색이다. 이번 징계도 뉴라이트 계열의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 임명 당시 우려했던 게 현실화됐을 뿐이다. 여기에 우편향 사학자인 이인호 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KBS 이사장에 사실상 내정됐다. 정권의 코드 인사로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뜻이라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있을 수도 없는 얘기다. 정작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야 할 곳은 KBS가 아니라 방통심의위다. 공정성을 상실한 방통심의위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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