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어제 임영록 KB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 경고를 내렸다. 이 행장은 즉각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임 회장은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문책 경고가 곧바로 사퇴를 뜻하지는 않지만 통상 사임으로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임 회장의 버티기는 예상 밖이다. 물론 KB 경영진에 대한 징계가 당초 최 원장의 중징계 통보에서 제재심의위의 경징계 결정, 그리고 다시 중징계로 번복된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영진 간의 추한 권력다툼에 국민들의 인내가 한계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중징계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본다.
KB사태는 한국 금융권력의 후진적 행태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사태의 본질은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과정에서의 외압 등에 대한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 추궁이지만 어느 틈엔가 문책을 피하기 위한 볼썽사나운 로비싸움으로 변질됐다. 경영진들은 소명을 앞세워 정부 요로와 정치권을 헤집고 다녔고 이 과정에서 KB는 임 회장과 이 행장 편으로 나뉘어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화합을 위해 찾은 사찰에서까지 갈등하면서 결국 행장이 짐을 싸 돌아가는 저급한 모습까지 연출됐다. 두 사람에 대한 중징계 사유는 주전산기 기종 변경 과정에서 발생한 이사회의 안건 왜곡 등 내부통제의 문제점이다. 최 원장은 “임 회장은 전산기 교체를 위해 자회사 임원인사에 부당 개입했고, 이 행장은 전산기 교체에 따른 위험을 보고받고도 감독을 태만히 했다”고 밝혔다. 그러고는 이 행장에게는 중징계를 확정하고, 임 회장에게는 금융위에 중징계 조치를 건의했다.
금융감독원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결과를 뒤엎고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번 결정 이후 이 행장은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임 회장은 사실상 사퇴를 거부한 가운데 임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KB 사옥에서 퇴근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최 원장의 중징계에 임 회장은 외압부문의 진실규명에 애쓰겠다며 조직안정과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금감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인 그는 ‘모피아’ 낙하산의 상징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KB지주 사장이 된 뒤 새 정부 들어 회장까지 꿰찼다. 현 경제실세와도 막역하다. 아마도 금감원장쯤은 자신의 상대가 안된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각기 다른 권력의 끈을 잡고 내려온 낙하산들이 권력 확대를 위해 벌이는 꼴사나운 모습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갈등의 당사자였던 임 회장이 KB에 남아 경영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은 소도 웃을 일이다. 금융권력 간의 죽고 살기 식 파워게임만 확인하는 꼴이다. 세간에서는 벌써부터 ‘최·임 전쟁’의 결말 예상으로 가득하다. 언제까지 낙하산 수장이 정당성을 확보한 채 금융회사를 활보해야 하는 건지 한숨만 나온다.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그인]파업할 수 없다면 촛불을 (0) | 2014.09.04 |
---|---|
[기고]기업이 수혜자인 유류보조금 (0) | 2014.09.04 |
[사설]‘전교조 죽이기’ 이제는 중단해야 (0) | 2014.09.04 |
[사설]방통심의위의 KBS ‘문창극 보도’ 징계가 남긴 것 (0) | 2014.09.04 |
[기자메모]툭하면 ‘위헌’이라는, 자가당착 새누리 (0) | 201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