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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노동자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난 11일 자정 무렵 사망한 서부발전 사내하청 노동자 김용균씨다. 어둡고 비좁은 컨베이어벨트 아래서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나는 김용균씨에게 사과하고 싶다.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전문가협의회에 내가 전문가 위원으로 1년간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 논의가 빨리 마무리됐더라면, 그래서 작업환경이 개선됐더라면, 어쩌면 김용균씨는 생을 달리하는 대신 연말에 가족과 함께 소박하지만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발전5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가장 더딘 사업장이다. 연료운전 분야는 1년 동안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을 못 내리고 있고 경상정비 분야는 정규직화 논의를 시작도 못했다. 특히, 김용균씨의 업무였던 연료운전 분야는 원청인 발전소가 생산설비를 소유하고 하청회사가 인력을 제공하는 전형적인 노무도급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정규직 전환 대상이지만 발전소 원청회사들은 최근까지도 연료운전 업무가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라서 정규직 전환의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를 노무도급 형태로 운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 정부의 가이드라인에도 단순히 전문적인 업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해서는 안되며 민간회사가 고가의 시설·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만 정규직 전환 예외라고 명시해 두고 있다. 따라서 회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 김용균 사회적타살 책임자 처벌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발전회사가 하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주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는 정부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공공기관 민간위탁을 장려해 온 경우 정규직 예외사유로 정해 놓았는데, 발전회사들은 이를 근거로 발전소 사내하청 민간회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 정책을 꾸준히 확대했다. 발전도 예외는 아니어서 크고 작은 30여개의 민간회사가 발전소의 운전과 정비를 도맡아 하고 있으며 그 인원은 5302명이다. 이는 발전5사가 직접 고용한 인원의 44%에 해당한다. 따라서 발전회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논의가 속도를 내려면 발전산업의 민간 개방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발전소의 운전과 정비 업무가 민간에 위탁되어 있으나 이들 업무가 국민의 생명·안전업무와 관련되어 있기에 파업권이 제약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연료운전의 경우 필수유지율이 100%로 파업이 불가능하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한 업무를 과연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 타당한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철도, 도로, 발전 등 중요한 국가기간산업에서 간접고용의 남용이 어떤 사회적 이익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용절감도 좋지만 각종 사고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진다면, 그리고 누군가 가족을 잃어야 한다면 경제적 이득보다 사회적 손실이 크다.

김용균씨의 죽음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약속대로 정규직화 논의를 재개해 조속한 시일 내에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실현하는 것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된다. 늦었지만, 정부와 발전5사는 정규직이 되길 바라고 열심히 일했던 고 김용균씨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길 바란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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