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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범국민추모제가 지난 22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30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시민들은 ‘내가 김용균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목놓아 외쳤다. 범국민추모제를 주최한 시민대책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를 비롯해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수립,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안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추모제에서 김용균씨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했다. “이 나라가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까닭으로 스물네살 꽃다운 청춘이 무너져내린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비록 우리 아이는 원통하게 갔지만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는 아들 동료들이 하루빨리 위험에서 벗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광장의 절박한 외침에 아랑곳없이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안을 두고 여야는 때늦은 공방만 벌이고 있다. 김씨 사망사고 직후 성난 여론에 놀라 “12월 임시국회 처리”를 다짐했던 때와는 온도가 달라졌다. “법 개정을 더 미룬다는 건 직무유기”라더니, 막상 법안 심의에 들어가자 정쟁 거리로 삼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치권이 마땅한 책무를 다했다면 김씨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년 전 ‘구의역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치권은 앞다퉈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7개 법안을 패키지로 내놨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이들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하나도 없다.

휴면 상태의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되살린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김씨의 애꿎은 죽음이 계기가 됐다. “국회의 태만이 꽃 같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절규를 직시해야 한다. 국회에 제출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범위 확대, 산재 사망사고 시 사업주 처벌 강화, 위험한 작업의 원칙적인 하청 금지 등이 담겼다. 제2, 제3의 ‘김용균’을 막을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하지만 비용 증가를 이유로 저항하는 재계와 그들의 눈치를 보는 보수야당 때문에 연내 법안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더는 비용 문제를 이유로 약한 노동자들을 죽음 앞으로 내모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여야는 12월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처리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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