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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호주의 생태학자인 104세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안락사를 계기로, 지금 영미권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기 때문에, 구달 박사는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는 스위스로 건너갔다. 그리고 바젤 라이프 사이클링 클리닉에서 평소 좋아하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으며 진정제와 신경안정제 등을 투여받고 영원한 안식의 길을 떠났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건강하게 살다 어느 날 고통 없이 ‘자연사’를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자 축복이다. 그러나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회복 불능의 불치병 환자나 중증치매 환자의 생명을 무작정 연장시키는 것이 환자 본인이나 가족, 국가를 위해 과연 옳은 일일까. 중병에 걸려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삶을 살거나, 중증치매로 가족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를 인위적으로 계속 살려 놓는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전국에서 사망한 65세 이상 노인 12만2531명을 추적·분석한 결과를 보면, 노인이 사망하기 전 10년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지낸 기간은 평균 661일로 나타났다. 2016년(593일)보다 2개월 이상 늘어났다. 요양기관에서 보낸 기간이 늘어나면서 진료비 역시 급증하고 있다. 2017년 기준 10년간 총 진료비는 5조6125억원으로 2016년 대비 1조714억원(23%)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별 통계자료에 따르면, 치매 환자 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17%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는 한, 치매 환자가 2030년에는 127만명, 2050년에는 271만명으로, 20년마다 2배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인력 손실 및 건강보험재정 지출 증가는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비용으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부터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다. 존엄사란 산소호흡기 등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회복 불가능 판정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반면, 안락사는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존엄사와 같은 소극적인 치료 중단행위가 아니라, 당사자의 희망에 따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약물 등을 이용해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안락사는 행위자에게 살인을 한다는 죄책감을 심어줄 수 있어 현재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당사자의 희망에 따라 약물 등을 이용해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생명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이다. 환자 본인이 희망하고 가족들이 수긍하고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가가 인정했을 때 삶의 존엄성 차원에서 안락사를 허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이 없는 불치병 환자나 중증치매 환자들에게 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서 현대판 유배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 자체가, 고통 없이 죽을 권리마저 빼앗는, 또 다른 인권침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 허용 문제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윤배 | 조선대 교수 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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