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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족이 등장하는 예능프로그램을 우연히 보는데 웃음이 안 난다. 부족문화를 체험하는 형태의 예능은 문명과 동떨어진 순수한 원주민과 불편·낯섦을 체험하는 문명인 사이의 대비로 재미를 만든다.

이런 식의 ‘체험’은 주로 사회문화적 권력에서 우위를 점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수많은 미디어에서 반복하고 있는 장애극복과 동정, 장애체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삶이나 정체성을 ‘체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권력이다. 흔들리지 않는 위치가 만든 제자리는 ‘관계’로 이어지지 않고, 문화 상대주의라는 말로 비교적 안전한 소비거리가 된다.

만약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체험으로 즐거웠던 특정 문화는 위험하다고 비난받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어떤 절차로 부족을 문명화시킬 건지 시스템을 강조할 것이다. 관광과 체험으로 소비하는 것 말고, 함께 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증거는 다양하게 드러날 것이다.

지난 6월 21일 예멘 난민 자말씨 가족이 머물고 있는 제주의 한 가정집 부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7월2일 지하철을 연착시킨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신길역 리프트 추락참사에 항의하며 서울시와 지하철공사에 사과와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공공의 공간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막아선 것이다. 지지와 관심을 표현하는 시민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장애인만 사람이고 시민이냐며, 다수의 시민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과 나를 막아선 시민은 “다수의 시민을 불편하게 하니 나도 막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동정이나 체험으로 전시하던 미디어를 사이에 두고 있을 때의 평온함은 사라졌다. 장애인들이 시민으로서 제자리를 물으니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라는 메아리가 돌아온다.

발달장애인 주변인 교육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성적) 문제행동을 줄일 수 있냐는 거다. 많은 발달장애인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공간을 자유롭게 경험하기보단 통제적인 삶을 산다. 발달장애인의 언어와 표현을 사회는 문제행동으로 쉽게 규정한다. 장애 정도와 특성이 무관하진 않겠지만, 사회는 한결같이 ‘발달장애’로 인한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장애극복, 순수한 장애인의 이미지와 다른 발달장애인을 만날 때 사회는 여전히 독해불가 입장이다. 해석 불가능한 표현은 문제행동이 되고 사회는 과잉대응한다. 발달장애인의 안전과 다른 구성원이 겪을 위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적당한 제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거주시설이었다.

제주에 머물고 있는 예멘 난민을 생각한다. 제주 도착 소식이 아닌 전쟁 참상이 보도되었다면 사람들은 동정의 마음을 더 보냈을까? 미디어를 사이에 두고 먼 이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내 나라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여겼을까? 난민이 젊은 남성일 때 일자리 위협, 성범죄와 같은 위험이 커진다는 것은 어쩌면 발달장애인에 대한 과잉대응과 비슷하진 않을까?

난민은 제자리를 떠나온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난민이 있는 바로 여기가 그들의 제자리다. 난민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혐오를 멈추고 우리와 여기가 변화할 때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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