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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는 친구가 있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유선전화를 잘 받는 것도 아니다. 이 친구한테 연락하려면 이메일을 보내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친구가 직장을 갖고 있다면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원을 너그럽게 봐주는 회사는 흔치 않다. 동아리나 가족도 다르지 않다. 반나절 이상 연락이 안되면 실종신고를 해야 하는 세상이다.

친구는 전업 작가다. 문단에 나온 이래 줄곧 ‘재택근무’를 해왔다. 평생 출퇴근을 해온 나로서는 스마트폰이 없는 친구가 부럽기만 하다. 돌아보면 나는 정보통신기술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새로운 기기를 들고 다녀야 했다. 삼십대 중반 삐삐(무선호출기)를 시작으로 시티폰, 휴대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그사이 정보고속도로가 깔리고 유비쿼터스를 거쳐 초연결사회가 개막됐다. 

그러는 사이 ‘행동하는 네티즌’이 촛불을 들기 시작했고 유모차가 광장으로 나왔으며 노란 리본이 세월호를 뭍으로 끌어올렸다. 이어 촛불혁명이 정권을 바꾸고 해시태그가 남성중심주의로 대표되는 권력구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는 주역으로 떠올랐다.

온라인상에서, 때로는 광장에서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만 사적 영역에서 소셜미디어가 긍정적 변화만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블로그도 없다. 내 나름으로는 인터넷을 자제한다고 하지만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한창때 같으면 한 시간이면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한나절 넘게 걸리곤 한다. 집이나 연구실에서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안경이나 전화, 지갑 중 하나를 놓고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퇴행현상을 건망증이나 강박증으로 돌리려 했다. 니콜라스 카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문을 나설 때마다 나이를 탓하거나 느슨해지는 마음가짐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카는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산만하게 바꾼다고 경고한다. 우리 뇌는 가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인터넷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면 주의력, 사고력, 공감능력, 열정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카는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명언으로 알려진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한의 지적 후예다. 카는 맥루한을 따라 미디어가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정책 결정자부터 인터넷을 멀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육아나 교육 현장, 기업도 마찬가지다. 카가 제시하는 대안 중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자연을 가까이 하라.’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벽에 자연 풍광이 담긴 사진이라도 걸어놓고 자주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지 구조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최근 <메시지가 미디어다>라는 책이 나왔다. 정치 컨설팅과 선거 캠페인 전문회사인 스토리닷 유승찬 대표의 저서다. 이 책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제목 때문이다. 맥루한과 카의 관점을 보기 좋게 뒤집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맥루한의 이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을 인정하되 소셜미디어 환경과 메신저의 새로운 역할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유 대표는 촛불혁명이나 미투 운동이 ‘스마트폰 행동주의’의 결정체라고 본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메신저들이 메시지를 미디어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메시지가 두 가지 요건, 즉 경험과 가치를 결합하면 미디어가 된다고 말한다. 자기 경험을 구체적 이야기로 만들되, 그 이야기가 공적 가치와 만나면 급속도로 확산된다는 것이다. 중증발달장애인 여동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이 좋은 예다.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탈시설, 장애등급제, 여성 문제 등 사회적 이슈로 확장되면서 미디어로 거듭났다. 

유승찬 대표는 소셜미디어 시대에 메시지는 메신저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여의도든, 시민사회든, 노동조합이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진실한 경험과 보편적 가치’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말한다. “메시지만 있으면 메신저는 순식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가 되고 반응을 이끌어낸다.” 미디어가 아니라 메시지와 메신저가 주어가 되는 순간이다.

나는 미디어가 갖고 있는 양면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순간 겪고 있듯이 역기능이 작지 않다. 무엇보다도 검색이 사색으로 접속이 결속으로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순기능을 증폭시켜야 할 때다. 국민, 시민, 주민이 각자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유해야 한다. 자기성찰과 표현, 공감과 참여야말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핵심동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권자임을 증명하는 여러 방법 중에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것이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과 깊이 만나려면 인터넷을 멀리해야 한다. 니콜라스 카가 권유했듯이 정기적으로 스마트폰을 끄고 나와 대면할 일이다. 내가 온전한 나로 돌아갈 때, 그때 진정한 나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안에는 나의 삶뿐만 아니라 이 세계가 다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 이야기가 메신저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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