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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제기되고 있는 상당부분 주장들이 정치와 군사관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운영의 동력을 훼손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번 군사합의 의미를 폄훼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군 고위 장성 출신이라는 점은 문제가 심각하다. 고위 군장성 출신 인사가 정치적 결정을 군사적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민군관계가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결정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군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예비역 고위 장성들이 안보 현안에 대해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전역했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당연한 시민적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군 고위 장성으로 연금과 예우를 받으면 정치와 군사의 원칙을 충실하게 준수해야 한다.

정치적 결정을 군사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완책을 제시하는 등 범위에서 그쳐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군사적 관점에서 정치적 결정을 뒤집어서는 안된다. 군사적 관점에서는 타당한 것 같지만 국가지도자의 정치적 결정과 결단은 그런 일부 전문적 영역 범주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군비통제 협상은 한반도에서 위협을 낮추어서 국가 안보를 강화하겠다는 차원이다. 이러한 결정에 군사력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했으니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군은 강력한 대응을 통해 국가 안보를 지켜나가지만 정치는 위협 수준을 낮추어서 국가 안보를 지킨다.

이번 군비통제 합의는 북한도 지켜야 한다. 북한이 그동안 믿을 수 없었다고 해서 남북정상 간 결정까지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유리하고 덜 유리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군사분야 합의서에 대한 논쟁의 출발점은 과연 지금 서명한 합의서 내용으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여하히 방지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번 남북 간 군사분야 합의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 합의로 인해 북한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북한군부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합의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유리한지를 몇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북한은 군비통제 원칙을 완전하게 양보했다. 1974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북한은 즉각적인 군비축소를 주장했다. 반면 우리는 신뢰구축을 거쳐 운용적 군비통제와 구조적 군비통제 이후 군비축소의 단계적 과정을 주장했다. 수십년간 남북 간 군비통제 역사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았던 원칙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합의를 통해 신뢰구축과 운용적 군비통제를 먼저 실시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김일성 이후 지속해오던 원칙을 포기했다.

두번째, 북한은 서해평화수역을 수용함으로써 NLL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기존에 주장해오던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주장하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남북 군사당국 간 논의될 것이다. 서해평화수역을 놓고 NLL을 포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점에서 어긋난다.

세번째, 북한은 정찰 수단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북한은 무인기로 청와대를 위시해 남한 전역을 정찰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합의로 북한은 군사적으로 훨씬 많은 제약을 받게 됐다. 반면 우리는 한·미동맹의 전략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전략자산을 협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이번 합의서는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결정이다. 군은 국군통수권자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국가방위의 최후 보루인 군은 합의가 잘 준수되지 않았을 때 대응방안도 같이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군의 역할이다.

<한설 | 전 육군 군사연구소장 (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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