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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른바 ‘물컵 투척’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 경찰, 관세청 등 11개 기관이 수사·조사해온 한진 총수일가 비리 의혹에 대한 첫 단죄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불법과 탈법, 갑질을 일삼으며 사익만 추구하는 재벌 일가의 구태를 근절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검찰은 또 외면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16일 (출처:경향신문DB)

조 회장은 배임·횡령·사기 및 약사법·국제조세조정법·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이 인정한 공소사실을 보면, 재벌기업의 전형적 비리 행태를 총망라하고 있다.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 등을 사들이며 중개 수수료를 챙기고, 어머니를 계열사 직원으로 등재해 허위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자녀들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해당 기업이 비싸게 매입하도록 한 혐의 등이 그것이다. 조 회장은 맏딸 조현아씨의 ‘땅콩 회항’ 사건 당시 변호사비용 17억원을 회삿돈으로 내게 하고, 인하대병원 앞에 ‘사무장약국’을 열어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부정하게 타낸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정도 혐의로도 구속을 면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1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검찰 또한 수사에 최선을 다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조 전 전무에 대한 수사결과는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특수폭행은 물컵을 사람 없는 방향으로 던졌다는 이유로, 업무방해는 대한항공 업무 처리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각각 무혐의로 결론났다. ‘반의사 불벌죄’인 단순 폭행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 ‘공소권 없음’ 처분됐다. 피해자는 광고대행사 직원이다. ‘갑’인 재벌 기업과 계속 거래해야 할 ‘을’이 어떻게 갑의 처벌을 바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수사 결과에 씁쓸할 따름이다.

한진 총수일가와 관련된 수사가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조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특수폭행·상습폭행 혐의, 딸 조현아씨의 밀수·외국인 불법고용 혐의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남은 수사에서는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상식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조 회장은 구속을 면했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이제라도 가족경영의 폐해를 근절하는 전면적 쇄신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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