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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기고]대통령의 ‘식언’

opinionX 2018. 10. 10. 11:00

문재인 대통령은 또다시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유은혜 후보자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송영무 국방·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으나 임명했다. 처음부터 일방적인 임명을 하고자 했다면 불필요한 인사청문회는 왜 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인사 배제 원칙을 제시하고 이에 관련된 인사는 각료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공약한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기 내각 조각을 모두 마치고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음주 운전’과 ‘성범죄’ 항목을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인사 배제 7대 원칙이 된 것이다.

‘인사청문회법’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밟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고 견제하고자 2000년 만들어졌다. 그런데 국무총리 등 일부를 제외하고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는 구속력이 없다. 청문회 결과, 국회에서 부적격 보고서를 내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청문회는 통과의례일 뿐, 국회 청문회나 국민의 잣대가 아니라, 대통령이 가진 고유의 기준에 의해 임명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이 같은 사례는 10건을 넘었다. 문재인 정부 인사도 과거 정부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 자신이 후보 시절 공약한 인사 배제 원칙마저 무시한 채, 이런저런 군색한 변명과 함께 이번까지 6번째 임명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사청문회 무용론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우리와 달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의 청문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서 토론 없이 표결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인사청문회의 핵심은 바로 소요 기간이다. 보통 대통령의 사전 인선에 평균 270여일, 행정부 인준 준비에 평균 28일, 상원 인준에 50일 등 총 350일 정도가 소요된다. 즉 1년 가까이 선정된 후보자를 검증한 후 인준을 한다.

반면에 우리는 청문회 기간이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정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도 이제는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간을 충분히 늘리고, 도덕성과 능력 위주의 검증제도로 바꿔야 한다. 사실 현재와 같은 인사청문회 제도라면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 시간, 세금, 전파 낭비만 가져오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범법행위를 한 인사가 국무총리나 장관이 된다면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 특히 박근혜 정권과 별반 다름없는 정부 탄생을 염원하며, 국민들이 엄동설한에 촛불을 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도 스스로 국민과 한 약속을 여러 차례 식언(食言)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대통령의 많은 선거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윤배 | 조선대 명예교수 컴퓨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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