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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유치원장이 교비로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등의 비리 행태에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리 유치원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잇달아 올라온다. 지난 5일 박 의원 주최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의 반발로 파행을 겪은 배경을 이제 짐작할 만하다.

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3~2017년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사립유치원 1878곳에서 비리 5951건이 적발됐다. 전수조사도 아닌, 각 교육청이 자체 기준에 따라 선별해 이뤄진 조사 결과다. 사례를 살펴보면 더 기가 막힌다. 경기도의 한 유치원 원장은 정부 지원금과 매달 학부모가 내는 돈으로 노래방·숙박업소에서 결제하고 명품 가방과 성인용품까지 사들였다. 인천의 한 유치원은 교육업체와 짜고 교재비를 실제보다 많이 지급한 뒤 차액을 차명계좌로 돌려받았다. 서울에선 교직원 복지적립금 명목으로 설립자 개인 계좌에 1억여원을 쌓아두거나, 설립자 명의로 6000여만원을 만기환급형 보험에 적립한 사례가 적발됐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립유치원에는 국가예산이 해마다 2조원 이상 지원된다. 그럼에도 국공립유치원과 달리 정부가 회계를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2017년 2월 국무조정실은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사립유치원 재정 투명성을 위한 회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사이 구축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교육당국이 사립유치원들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올 법하다. 교육부는 박 의원의 명단 공개로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사립유치원도 국공립처럼 회계 시스템을 도입하고, 시·도교육청 감사 결과를 실명 공개하는 방안 등의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대책이 좌초하는 일이 생겨선 안될 것이다.

사립유치원들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심각한 비위도 있지만, 고의성이 없는 단순 실수도 섞여 있다. 국공립유치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이 유아교육의 큰 몫을 책임져온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거액의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감시는 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사립유치원은 학원이 아니다.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에 따른 ‘학교’이다. 유치원 설립·운영자들은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처신해야 한다. 정부도 모든 사립 교육기관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강화하는 데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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