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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육포럼이 열렸다.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평등한 양질의 교육과 평생학습교육을 통한 삶의 변화를 위해 정부가 교육에 대한 우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천 선언’도 채택됐다. 하지만 걱정이 하나 있다. 인천선언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서울시의 교육혁신이 조희연 교육감의 공백으로 표류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후진적 불평등 교육시스템을 없애고 21세기형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서울시의 교육혁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2000년 초 천안의 한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나의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아산시의 한 시골학교인 거산분교가 학생이 20여명밖에 안 남아 폐교선고를 받아 문을 닫게 되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책읽기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을 해온 교사들이 자청해 이 학교로 전근해 폐교를 막고 생태학교로 되살리려 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환경교육에 뜻을 두었던 난 너무나 반가워 흔쾌히 자문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후 나는 거산초에서 학생들에게 환경과학을 가르치고 환경음악회를 열고 학부모들을 초청해 밥상머리교육을 실시했다. ‘지구를 위하여’, ‘김치 된장 청국장’ 등의 환경노래를 보급하는 등 2년간 거산초등학교를 살리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교사들은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을 폐기하고 산과 들로 나가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학생들의 발표와 질문, 토론 위주의 창의적 역량을 끌어내는 교육혁신을 단행했다. 또한 유기농 무상급식을 시작했고 학부모들은 회의를 통해 학교에 자신들의 의견을 내고 배식을 돕거나 악기를 가르치는 등 교육에도 참여했다.
또한 양봉전문가나 수의사, 숲 해설가, 유기농업 지도사 등 분야별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자연체험 위주로 교과과정으로 전환해 나갔다. 학생들이 학교수업이 재미있어 방학이 오는 것을 싫어할 정도로 학교공부를 좋아한다고 소문나자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거산분교는 폐교선고 이후 3년 만에 학생수가 150명이 넘자 본교로 승격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이에 전국에서 교육혁신을 꿈꾸는 교사들이 방문해 거산의 교육시스템을 배워갔고 학교에 유기농 급식을 공급하기 위한 사회단체들이 생겨났다. 유기농무상급식이 진보교육의 아이콘이 되면서 이젠 전국에 500여개가 넘는 혁신학교가 생겨났다.
서울 강동구 일자산 자연공원 영농체험장에서 열린 모내기 행사에서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를 심고 있다. (출처 : 경향DB)
21세기는 상명하복의 근대적 이성을 추구하는 기계인간을 키우는 종속적 교육보다는 자기만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수평적 교육이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어도 이상하게도 창의성을 요구하는 과학부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산업혁명 당시 공장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러시아식 교육이 일본에 들어가 침략군인과 황국신민을 양성하기 위한 제국주의교육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1905년 신식교육이란 이름으로 식민지인 우리나라에 주입됐는데, 해방 70년이 지났어도 그 틀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후진 교육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유는 교육분야의 철밥통을 깨기 힘든 현실도 있지만 MB정부가 들어선 이래 권위주의적 획일화 교육으로 교육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21세기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동안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추진해온 진보적 교육정책들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한다.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어 받아쓰고 외우게 하는 입시교육에서 해방시켜 산으로, 들로 나가 마음껏 자연을 누리도록 풀어주자.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어야 창의성이 자라고 자발적 열정도 생긴다.
21세기엔 이런 메타인지능력이 있는 창의적 인재를 만들어야 한국경제도 계속 발전할 수 있고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것이다.
이기영 |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 호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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