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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시론]음압격리와 돌봄

opinionX 2015. 6. 22. 21:00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한 달이 넘었다. 국민들은 공포와 불안 속에 있다.

메르스 때문에 의학용어인 음압격리를 알게 됐다. 전염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병원에는 격리병동이나 격리병실을 두고 있다. 특히 공기로 전염되는 전염병의 경우에는 음압병실을 설치해 운영한다. 음압병실은 병실 안과 밖의 기압차를 이용해 병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음압(陰壓)은 기압이 낮음을 의미한다. 병실의 기압을 바깥의 기압보다 낮게 해 병실의 병균이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음압병실은 모든 면에서 외부로부터 격리되게 한다.

음압격리는 병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경향신문(2015년 6월16일자)에 따르면 김용갑 전 의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해봐서 알지만 청와대 안 공기와 바깥공기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음압격리는 안 공기와 바깥공기가 다르게 하는 방법이다. 바깥공기와 안 공기가 다르다는 것은 소통이 없음을 말한다. 공감이 없음을 말한다. 김용갑 전 국회의원은 청와대 안과 청와대 바깥 간에 소통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청와대 안과 청와대 바깥 사이에 음압격리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시민과 권력층 사이에 음압격리가 있다. 메르스 공포 때문에 시민들은 전철이나 버스 속에서 들숨과 날숨에 신경을 써야 하고, 기침하는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남편이 메르스 확진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 뒤 아내도 감염되어 며칠 지나지 않아 주검이 됐다. 자녀들은 격리되어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메르스 공포와 불안에도 불구하고 어느 권력층은 고급 승용차의 뒷좌석에 기대어 고급식당과 청와대와 대기업 빌딩을 오가고 있다.

어느 정치권 인사는 손만 잘 씻으면 메르스가 퇴치될 수 있는데 호들갑을 떠느냐, 속히 일상생활로 돌아와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의 병실과 권력층의 병실 사이에 기압의 차이가 있어 음압격리가 생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19일 서울 국립의료원 격리병동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메르스라는 국가적 고통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격리되고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메르스가 드러낸 우리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시동이 걸려 있지만 1㎝도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와 같다. 소리는 요란한데 비어 있는 수레와 같다.

메르스 때문에 정치인들은 소리는 요란한데 하는 일은 없다. 공감이 없기 때문이다. 역지사지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후보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전과 다른 색다른 질문이 주어졌다. 대통령 후보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다.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사람보다도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적격이라면서 ‘공감’을 1순위로 뽑았다.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면 공감의 범위가 가족이나 혈연 관계 정도에 머무르게 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국민들에게 자기를 표현하지 못하게 하면 공감이 일어나지 못한다. 공감이 일어나지 않으면 국민은 공감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이나 고향사람에게만 한정시키게 된다.

이것이 ‘가족이기주의’와 ‘지역이기주의’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국가적 문제가 생길 때 국민은 성급한 결정을 하게 된다. 국민은 창조성을 키우지 못했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여유가 없게 된다. 사람을 돌보는 위치에 있는 분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만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많이 만나지만 여전히 음압격리되어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희철 | 서울신학대 상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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