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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인의 죽음이 또 우리를 먹먹하게 한다. 40세 한창 나이인 연극배우 김운하씨(본명 김창규)가 지난 19일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홀로 생활고와 지병에 시달리다 사망한 지 5일이나 지난 상태였다고 한다. 연고자를 찾을 수 없어 극단 동료와 대학 동문, 지인들이 뒤늦게 빈소를 차리고 장례를 치렀다고 하니 가슴이 더욱 아프다. 2011년 1월 경기 안양의 월세방에서 지병과 생활고 끝에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를 떠올리게 한다.

김씨는 2015 서울연극제 수상작인 연극 <인간동물원초>에서 방장 역을 맡았고 내달 있을 재공연 무대에도 오르기로 예정돼 있었다. 연극계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월수입은 30여만원에 불과했다고 한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병행하다 보니 대학 시절 권투와 격투기 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강건했던 몸도 배겨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는 3개월 전부터 방 하나당 면적이 3.3~6.6㎡인 고시원에서 혼자 살면서 고혈압, 신부전증, 알코올성 간질환 등 지병과 싸우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위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시행하는 청년예술가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 ‘예컨대’ 참가자들이 지난해 11월 오디션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젊은 예술인의 고독사는 우리 예술계와 예술인이 처한 현실에 다시 한번 큰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최고은씨 사망을 계기로 2012년 국회가 예술인복지법(일명 최고은법)을 제정해 생계가 어려운 예술인을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시늉뿐이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미 법제정 때부터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지원 대상자 선정 기준 등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지원 대상이 협소하고 사각지대가 너무 넓다 보니 김씨처럼 아예 예술인복지제도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할 정도다.

연극계를 비롯한 국내 예술계의 현실도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CF 한 편에 수억원을 받는 정상급 스타의 저변에는 월수입 100만원 이하의 예술인이 전체의 3분의 2, 김씨처럼 월수입 50만원도 안되는 극빈층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예술성보다 상품성, 실체보다 이름값, 다양성보다 획일성이 문화·예술 시장을 지배하는 경향도 이런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예술인이 겪는 가난은 우리 예술도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 마음껏 예술혼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적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목숨 걸고 예술을 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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