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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인간의 조작 없이 정보를 주고받게끔 하는 시스템을 사물인터넷 또는 만물인터넷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처음에 사물인터넷의 정의를 접했을 때는 솔직히 말해 무슨 뜻인지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도대체 전자동화(automation)라는 의미 이상의 것이 사물인터넷에 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언어의 유희라는 나름의 섣부른 판정까지 내리기도 했다.

사물들이 인터넷을 하면 앞으로 인터넷을 사물들에 판매한다는 것인가. 즉 시장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사물들이란 것인가. 공학적 마인드가 부족해서인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나름 인간과 과학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 지 어언 20년에 접어든 중견학자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라면 그 명칭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아니면 인터넷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코드가 달라서일까.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뒤진 사물인터넷 정의 글귀를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어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물인터넷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아무리 발전된 기술이라 할지라도 선형적 발전을 거쳐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테크놀로지의 원형을 추적해 들어가면 현 단계의 발명품은 반드시 그 전조 내지 모태를 품고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그렇고, 세탁기가 그렇고, 냉장고가 그렇다. 모터와 프레온가스라는 촉매제가 있어서 발명이 가능해졌을지라도 필자가 보기에 이들 발명품은 그다지 혁명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만큼은 달랐다. 소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혹자는 구텐베르크에 의해 이룩된 인쇄술이 종이 매체를 낳았고, 그것이 점차 전자화된 것이 인터넷이라고 ‘격하’시킬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이 인간 사회에 던진 충격적 여파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하기에 그러한 주장은 곧 설득력을 잃는다.

인터넷이 혁명적인 이유를 좀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한다. 인터넷이 앞서 말한 자동차·세탁기·냉장고와 다른 이유는, 전자가 소프트웨어 기반이고 후자가 하드웨어의 대명사들이라는 구분을 떠나서라도, 전형적인 인간 주도형의 테크놀로지라는 점이다. 물론 요즈음의 자동차는 소프트웨어적 기술 없이는 작동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 주도형의 과학적 산물은 아니라는 데서 인터넷과 운명을 달리한다. 아마도 수년 내에 우리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이는 자동차가 대중화되리라 전망한다. 이같이 전자동화된 자동차가 사물인터넷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우선 앞서기도 하는 이유이다.

SK텔레콤이 전북 고창군 한 민물장어 양식장에 구축한 사물인터넷 기반 ‘스마트 양식장’ 시스템을 양식장 관리자들이 시연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앞서 말한 인간 주도형의 테크놀로지를 달리 표현하면 소비자 주도형의 테크놀로지다. 인터넷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하는 이유를 필자는 바로 이 점에서 찾는다. 인터넷의 주도권은 언제나 소비자에게 있었다. 소비자가 이용하고, 소통하고, 창조하는 무한공간이 바로 인터넷인 것이다. 인터넷이 무궁무진한 편리와 찰나의 속도를 가능하게 한 점에서는 다른 하드웨어적 기술과 다름이 없지만 인터넷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소비자였던 것이다. 사물이 이러한 인터넷의 주체가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마도 쉽사리 이해를 못했던 이유는 소비자들이 소외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지 싶다.

센서가 부착되어 사물들 간에 정보가 교환된다는 것을 두고 사물인터넷으로 포장하는 것은 마케팅의 일환일 뿐 테크놀로지의 진정성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위해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키고 있는지의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 무조건 앞선 편리와 속도를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그간 호응을 받았던 테크놀로지는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인간을 위한 기술’로 존재해왔다는 철학을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각인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창조하는 공간인 인터넷을 자동화 시스템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휴머니즘이 결합된 IT라는 철학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 오류이지 싶다.


김민하 | 성균관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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