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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경쟁주의, 성과주의가 한국 대학을 파괴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교수들의 업적을 논문, 강의, 사회봉사 등 수십개 지표로 점수를 매겨 S, A, B, C의 4등급으로 나눈 뒤 연봉을 차등지급하고 있는데, 실제는 논문이 전체를 좌우한다. 낮은 등급 교수들의 연봉을 빼내어 높은 등급 교수들에게 주니 상호약탈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예컨대 인문대의 경우 국문학, 사학, 철학 등이 동일 잣대에 따라 심사를 받는데 이것도 말이 안된다. 1년에 10편 이상 논문을 실을 수 있는 학과가 있는가 하면 한 편 쓰기 어려운 학과도 있다. 현행 평가는 학문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어 조악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끝없이 많다. 교수들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편법을 쓰게 된다. 논문 여러 개 쪼개기, 장기보다 단기 연구하기, 책 대신 논문 쓰기, 강의 무시하고 논문만 쓰기 등. 그러나 이건 발전이 아니고 후퇴가 아닌가. 논문 양은 늘어나는데 껍데기 연구가 판을 친다. ‘논문 쓰느라고 연구할 시간이 없다’는 농담이 바로 한국 교수의 자화상이다. 철학자 칸트는 46세에 비로소 교수가 됐고, 10여년의 침묵 뒤에 <순수이성 비판>(57세), <실천이성 비판>(64세), <판단력 비판>(66세)의 3부작을 완성했다. 칸트가 오늘 한국에 온다면 아예 대학 교수가 못될뿐더러 어렵사리 교수가 된다 한들 금방 쫓겨날 것이다.

미시간공대에서 최우수교육자상을 수상한 조벽 교수는 말한다. 성과연봉제는 교수들 사이에 동료의식 파괴, 개인주의 조장, 논문에 매달려 강의 무시하기 등 장기적 부작용이 크다고.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에서도 그럴진대 인화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보다 훨씬 졸렬한 한국 대학의 성과연봉제는 불합리, 불공평, 비인간의 극치로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학과 동료들끼리 인화가 깨짐은 물론, 신임 교수 채용에서도 탁월한 연구자가 새로 들어오면 기존 교수들의 성과등급이 내려가므로 우수 연구자의 채용을 기피하게 만든다.

개인별 성과연봉제가 대학의 참교육을 무너뜨리고 있다. 고려대학교 정문이 우뚝 서 있다. (출처 : 경향DB)



사실 경쟁이냐, 협력이냐 하는 것은 오랜 논쟁거리다. 아나키즘의 대가 크로포트킨은 명저 <상호부조론>(1902)에서 곤충, 새, 동물, 인간은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서로 연대, 협력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성과 연대가 없는 종은 멸망한다고 주장했다. 스탠퍼드대학의 저명한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 교수는 회사의 성과연봉제는 단기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효과가 마이너스임을 증명했다. 그래서 그는 개인별 보상을 반대하고 팀 전체에 주는 집단적 보상을 권고한다. 돈벌이가 목표인 회사도 이럴진대 하물며 학교야 더 말해 무엇하랴. 심리학자 알피 콘은 성과주의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에만 효과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페퍼와 콘의 연구는 외적 보상이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는 역설적 현상을 설명해준다.

당나귀를 움직이려면 당근과 몽둥이가 필요하지만 교수는 당나귀가 아니다. 교수는 자존심을 먹고 산다. 한국 대학을 망치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개인적이 아닌 집단적 성과연봉제는 생각해볼 만하다. 한 학과 교수들의 집단적 성과를 전국 대학의 동일 학과끼리 비교, 경쟁하게 하면 학과 내 화합, 열심히 연구하는 풍토 조성, 각 대학이 우수 인재 채용 경쟁을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최소 기준에 미달하는 소수의 게으른 교수들이 있는 건 사실이고, 이들에게 자극을 줄 필요는 있다. 그 이상의 대다수 교수들에게는 성과를 재촉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주면 한국에서도 칸트가 나올 것이다.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건설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정우 |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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