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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의 내부 비리를 신고한 공익제보자가 무고 혐의를 뒤집어쓰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금융당국이 제보자의 신원을 사건 당사자에게 노출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당사자의 소명만 듣고 사건을 덮으려던 당국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한 뒤 해당 업체와 거래은행의 대출 비리 의혹에 대해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당국의 업무처리가 이런 식인데 과연 고질적인 금융권의 대출 비리가 줄어들 것인지 의문스럽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노래방기기 전문업체 금영의 계열사에 근무했던 재무담당자의 고발 내용은 충격적이다. 회사 대주주의 200억원대 분식 및 횡령, 주가 조작, 주거래 은행인 부산은행의 편법 대출 의혹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리가 망라돼 있다. 하나같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알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그는 지난달 금융감독원 온라인 민원센터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신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고 혐의 고발장이었다.

공익제보가 활성화되어야 앞으로도 대형 참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취지의 시민단체 공동선언 (출처 : 경향DB)


제보를 받은 금감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보였다. 대출 비리 의혹의 당사자인 은행에 신고내용을 통보하고 자체 감사를 맡긴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니 애초 비리 의혹을 규명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다. 금감원은 이 과정에 제보자의 신원마저 통보해줬다고 한다. 은행이 제보자를 무고 혐의로 고발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은 “민원을 처리하면서 담당자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국의 안이한 업무태도와 공익제보에 관한 무관심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뒤늦게 특별감사를 벌이겠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언론 보도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게 뻔하다.

금영과 부산은행의 비리 의혹은 특별감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금영의 구조적 비리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금융당국이다. 부산은행의 불법 대출 정황을 파악하고도 자체 감사를 맡긴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더구나 은행이 부당 대출을 해 준 과정에 정·관계 로비 의혹마저 제기된 터다.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 공익제보자의 신원 노출도 단순한 업무 착오라며 뭉갤 사안이 아니다. 제보자가 자신의 신분을 공개한 금감원 직원을 형사 고발했다고 하니 수사당국이 나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뒤 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사후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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