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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16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가 개최됐다. 앞서 소년체육대회는 전국체육대회의 중등부에 포함돼 실시됐으나 이해 들어 전국스포츠소년대회로 독립했다. 학교 엘리트 체육의 서곡이었다.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하고 국가대표로 육성해 스포츠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후 전국 초·중등학교에서는 운동부 신설이 붐을 이뤘다.

전국스포츠소년대회는 국가주의 체육의 시작이었다. 대회 주최자는 민간기구인 대한체육회였지만, 행사의 기획과 진행은 사실상 국가가 주도했다. 대회 슬로건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첫 대회 개회식에서 선수들에게 “조국을 위해 충성스러운 국민이 되고 나라, 겨레,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화 채집은 경주에서 진행됐다. 삼국을 통일한 화랑의 얼을 계승해 바른 국가관을 확립하자는 취지였다. 1975년부터는 전국소년체육대회(일명 전국소년체전)로 이름이 변경됐는데, 이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 선수의 덕목도 국가가 요구하는 규율, 질서, 협동단결심, 투지 등이었다.

전국소년체전이 스포츠 향연인 적이 있었다. 대회를 개최한 시·도는 체전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고장을 홍보했다. 주민들은 어린 선수들에게 민박, 교통편을 제공하며 후한 인심을 자랑했다. 선수가 메달이라도 딸라치면 해당 학교와 고향 마을에서는 현수막을 내걸어 축하했다. 반면 축제의 그늘은 더 컸다. 조기 체육, 엘리트 체육이 강조되면서 학생선수들은 스포츠 스타를 꿈꾸었다. 체육특기자 제도는 성적 지상주의를 부추겼다. 선수들은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고,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다. 학교 운동부에서 폭력, 성추행이 만연해도 모두 쉬쉬했다.

정부가 성폭력 등 체육계의 고질적 비리 근절책을 내놓으면서 전국소년체전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체전 고등부와 통합해 학생선수, 일반학생 구분 없이 참여하는 학생체육축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50년간 유지해온 엘리트 선수 양성 등 체육 패러다임까지 바꾸겠다고 하니 일선 학교에 ‘공부하는 학생선수’ ‘인권이 존중받는 운동부’가 정착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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