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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돈보다 통찰력

opinionX 2015. 8. 11. 21:00

중국의 정보통신 기술은 이제 한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다. 샤오미, 화웨이 등 스마트폰 신흥 강자들의 활약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보다 몇 년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기술강국 중국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생산원가에서 중국을 이길 수 없는 데다, 기술력의 우위 또한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주목하고 있는데, 실리콘밸리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실리콘밸리는 과거에는 새너제이를 중심으로 반도체, 컴퓨터 제조 회사들이 많았지만,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업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중요한 특징을 몇 가지 열거하면, 첫째는 실리콘밸리에 미국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은 거의 없고 민간의 투자금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민간 자금이 풍부하고 철저하게 시장경제 원리이기 때문에 정부가 간여할 여지가 별로 없다. 미국정부의 역할을 굳이 들자면 정부지원을 받은 대학의 연구결과가 실리콘밸리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정도일 것이다.

둘째,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컴퓨터 분야에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빠져서 학교공부를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있다. 학력이 아닌 실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고액의 연봉으로 이들을 데려간다. 한국의 표준화된 채용시스템에서는 이러한 채용이 불가능하며 실리콘밸리에서는 한국처럼 대기업이 단체로 필기고사를 보는 일도 없다. 직장이동이 자유롭고 경력직 채용이 많기 때문에 인재채용에서 헤드헌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평소에 채용 대상을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정보를 수집·관리한다. 면접에서는 혹독한 질문으로 채용대상자의 업무능력과 발전가능성을 완벽하게 파악한다. 채용대상자 한 사람에게 5시간 이상 면접관을 바꿔가면서 면접을 하기 때문에 요행수로 합격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실리콘밸리의 가장 중요한 특장점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법령을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법령이 이상적인 법령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에 실리콘밸리에서 기존 법령을 침범하는 경우에 이를 단속하기보다는 새로운 시장의 출현 가능성을 주시하면서 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한국의 스타트업 관계자들_경향DB


최근 실리콘밸리의 성공작으로 공유경제의 대표주자 우버를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운수법 위반으로 퇴출됐지만, 미국에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 우버 정착의 가장 큰 걸림돌은 택시의 권리금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은 권리금이 없어서 택시업계에서 반발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뉴욕시의 예를 들면 시청에서 택시 사업면허를 경매방식(메달리온)으로 판매하고 기존면허도 자유로이 거래한다. 뉴욕 택시 한 대의 가격은 1년 전에 12억원 정도였다가 지금은 우버 때문에 절반 정도로 떨어진 상태다. 메달리온 수백대를 보유한 기업은 파산상태에 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버를 불법으로 몰지 않는 미국정부의 통찰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성공작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업종을 창출하면서성공했다. 한국의 기업환경에서 중요한 문제점은 정부가 기존 기업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버와 같이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기업은 원천적으로 탄생하기 어렵다. 정부의 정책기조인 창조경제는 대기업에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자신의 사업영역을 침범하는 강력한 신생기업을 우호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한국의 기업환경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정부는 이 점을 무시하고 정책자금만 지원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중열 | 아주대 IT융합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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