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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전 일이다. 세월호 사건과 함께 경향신문 편집국은 초비상 체제로 돌입했다. 필자도 정신없이 분주하긴 마찬가지였다. 매일 밤 1시쯤에야 컴퓨터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면 진도 팽목항, 안산 단원고, 목포해경 등을 맡은 기자들과 다음날 취재 방향을 협의했다.
‘아이들은 살아 있을까’라는 궁금함이 어느새 ‘실종자를 다 인양할 수 있을까’로 바뀌는 내 자신을 지켜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도대체 우리 어른들은, 대한민국은 무얼하고 있었는지 분노와 자괴감도 반복됐다.
지난해 4월23일, 진도에서 보고 한 줄이 올라왔다. ‘구명조끼 끈으로 서로를 묶은 남녀 고교생 시신 2구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전화통을 붙들고 취재과정과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마음은 어느새 심한 충격에 휩싸였고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1면에 보도하기로 했다. 대신 원칙을 세웠다. 감정적으로 묘사하지 말자. 추측하지 말자. 취재된 사실만 독자들에게 전달하자.
기사를 다듬으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두 학생의 이야기는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바다 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보도였다. 4월24일자 경향신문을 접한 독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격앙된 반응이 일었다. 도대체 그날 바닷속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느냐고, 왜 실종자 수색작업은 더디게만 진행되느냐고….
지어낸 이야기라는 주장까지 튀어나왔다. 며칠째 인터넷에서 공방이 오갔다. ‘아…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삐뚤어져 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장면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면 안될 것 같았다. 세월호의 진실이 왜곡되고 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취재원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제일 먼저 목격했던 잠수사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고 있었다. 진도 수색 현장에서도 떠났다. 어쩌다 1분가량 전화 연결이 되면 그는 “세상을 이토록 엉터리로 만든 기성세대의 한 사람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여전히 이 보도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취재기자는 하루에도 10여 차례씩 전화를 걸고, 수소문을 하면서 잠수사의 행적을 쫓았다. 오로지 세월호의 진실 하나라도 더 밝히기 위해.
4월31일. 잠수사 장형채씨가 침묵을 깨고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두 아이를 만난 이후 너무 혼란스러워 밤낮없이 술을 마셔야 했다. 정말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미안하고….”
평범한 한 잠수사의 용기가 자칫 숨겨질 뻔했던 세월호의 진실 하나를 들춰내는 순간이었다. 진실 하나를 찾아내고 밝히는 데에도 이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의 세월호 가족 숙소 울타리에 내걸린 노란 깃발이 갈가리 찢긴 채 바닷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출처 : 경향DB)
1년이 흐른 지금.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진실을 ‘숫자’로 감추려는 이들이 활개치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인양은 세금 낭비’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관료들은 진상 규명과 선체 인양은 뒷전인 채 “학생은 7억2000여만원, 교사는 10억6000여만원이 지급될 것”이라고 발표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인양비용은 1205억원”이라며 또다시 ‘숫자’를 꺼내들고 있다. 돈의 용처나 명확한 근거도 없이 천문학적인 액수를 발표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이 숫자가 ‘여론몰이’를 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이 드는 이유다.
숫자로 세월호의 진실을 가리지 마라. 왜 세월호에 갇힌 채 인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아직도 실종 상태인 9명은 어떻게 된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이 숙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세월호 인양과 진상 조사는 이를 위한 최소한의 책무다. 그러나 ‘4·16’이라는 숫자만은 반드시 기억하며 살자.
한대광 비즈&라이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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