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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 24일 ‘2015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주요 사항’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교육부는 ‘어느 영역으로 진로·진학을 결정하든 문·이과 구분 없이 인문·사회·과학에 관한 기초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일부 교과를 공통 교과로 개발하는 교육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이것이 고교 3년 동안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의 내용을 배우는 교육과정, 또는 문·이과 사이에 칸막이가 없어지는 과정 등으로 제각각 해석되고 있다. 작은 혼란이 아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이대로는 안된다. 그 이유로 6가지만 들겠다. 첫째, 대입전형 및 내신평가 방식과 연계하여 교육과정을 개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대입전형과 내신평가 방식이 교육과정과 수업체계를 지배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학교교육을 바르게 견인할 대입전형과 내신평가의 미래 방향을 함께 검토하며 교육과정을 확정하는 것이 옳다.

둘째, 이번 개정으로 수업의 질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의 핵심 목적은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의 고교수업은 문제풀이와 정보전달식 수업 위주다. 이는 수능시험의 과다한 영향력, 문제유형, 교수학습량의 과다와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가르칠 학습내용을 대폭 줄여, 진도 빼기식 수업에서부터 우선 벗어나야 한다. 진도 빼기식 수업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수많은 아동을 학습부진, 학습부적응으로 내몬다. 또 창의력 계발도 허상이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진정 바란다면, 현재의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풀이 교육부터 중단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통합교과를 수능과 연계시키려는 것도 문제다. 수능에 연계시키는 순간 교수학습은 창의력을 죽이고 점수 따기에 집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 열린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추진에 따른 교과용도서 구분 기준(안) 정책연구 토론회'에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전교조 교사들이 피켓을 들고 참석하자 한국사 국정화추진 시민사회단체협의회 회원들이 이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셋째, 이번 개정은 검증과정도 없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대주제(big idea)’ 중심으로 구성하려는 것이 문제다. ‘대주제’ 중심으로 가르치면 융합형 사고를 키울 수 있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일정을 늦추어서 반드시 검증 후 도입해야 한다.

넷째, 이번 개정은 교사 양성을 너무 쉽게 보고 있다. 융합형 교재를 가르칠 교사 양성에는 시간이 걸린다. 연수한다고 분절 교과를 가르치던 교사가 하루아침에 통합교과를 잘 가르칠 수는 없다. 미국의 경우, 성취기준을 먼저 정교하게 개발하고 평가 샘플을 만드는 데만 4년이 걸렸다.

다섯째, 교육부는 1년 과정의 공통과목을 공통수능으로 보려고 하고 있다. 공통수능을 보는 시기, 공통수능만으로 대학을 갈 학생들의 나머지 2년간의 학교생활은 상상이 안된다.

여섯째, 역량 향상이나 탐구수업을 견인할 평가 연구와 개발 계획이 빠져 있다. 영어에서 말하기, 쓰기 수업이 잘 안되는 것은 말하기, 쓰기를 실제와 가깝게 평가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깊다. 미국이 최근 개발해 올해 말부터 사용할 새로운 평가가 좋은 사례다. 미국은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컴퓨터 기반으로 평가할 수 있는 평가도구를 4년에 걸쳐 개발했다.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국도 교육과정 적용 이전에 창의적 문제해결능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교육과정 개정 취지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 일정을 연기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함께 고려하면서 제대로 개정하자. 교육과정 논의와 함께 대입전형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수능의 전면 절대평가 및 영향력 축소 방안 등도 제대로 논의하자. 학생들은 실험쥐가 아니다. 성급하고 근시안적인 교육과정 개정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


이찬승 |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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