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과목 8번 문항에 대해 법원이 오류를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민중기 부장판사)는 어제 수능 수험생 4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세계지리 과목 등급결정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들의 세계지리 과목에 대한 등급 결정 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출제 오류가 아니라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판결은 법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당연하고 옳은 결과라고 본다. 출제 의도에 의해 정답으로 예정됐지만 진실에는 부합하지 않는 답항뿐 아니라 객관적 사실, 즉 진실이 기재된 답항도 함께 정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논리는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객관적 사실, 즉 진실을 중시한다면 논란이 된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총생산액 규모와 관련해 명백히 틀린 지문을 고르게 한 문제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지문이 애매하거나 불분명하더라도 평균 수준의 수험생으로 하여금 가장 적절한 답을 선택하지 못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뒤늦게나마 2심 재판부가 이를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다.

아직 최종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출제 오류의 법적 인정에 따른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평가원은 해당 연도 응시생의 수능 등급을 일제히 조정해줘야 하고, 그에 따라 피해를 구제받으려는 소송이 봇물을 이루게 되는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대학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피해를 구제받거나 교육당국에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 등이 예상된다. 이는 교육당국이 자초한 것이다. 출제 오류가 지적됐을 때 깨끗이 인정하고 바로잡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한 결과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이제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수능 출제 오류 논란’을 단독보도한 2013년 11월 20일자 경향신문 (출처 : 경향DB)


교육당국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수능 출제와 채점을 담당하는 평가원과 이를 감독하는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을 지면서 사태 수습에 나서는 게 옳다. 지금 교육당국이 할 일은 법적 대응이 아니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피해 수험생에 대한 구제·보상 방안을 내놓는 것이다. 문제 하나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지 못하거나 재수를 결심하는 등 인생이 달라진 수험생들과 계속 법정에서 다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