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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2년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대북정책에 가장 후한 점수를 주는 듯하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5·1경기장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힘주어 말하던 모습은 현장을 가득 메운 15만 평양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도 충격 이상의 전율을 느끼게 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 당시 한반도는 전쟁의 먹구름이 가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서로를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 비난하며 자신의 버튼이 더 크다고 서로 협박했다. 

캐릭터 있는 북·미의 지도자들과 종신권력을 창출한 시진핑 주석, 그리고 한반도 문제에 가장 강경한 아베 총리까지, 한반도는 스트롱맨들의 전장 같았다.

한반도에서 한국은 분명 약한 고리로 취급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는 스트롱맨들과 적절히 조율하며 북핵 협상을 이끌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충돌의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띠와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데이비드 비슬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를 꼽자면, 첫째, 북핵 문제를 남북대화의 어젠다로 복귀시켰다.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이후 북핵 문제는 북한의 거부로 남북대화 의제에서 제외됐다. 2018년 4월의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25년 이상 논의 불가 영역이었던 북핵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루었고, 북·미 협상에 시너지 효과를 제공했다.

둘째, 한국은 남·북·미 정상외교를 주도하며 북핵 협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 북핵 협상은 2017년 말과 2018년 5월, 그리고 2019년 2월 등 세 차례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주도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판문점선언과 남북 정상의 긴급 회동, 그리고 조기에 성사된 한·미 정상회담과 적절한 전화 외교를 통해 북·미 양국의 이탈을 방지하고 협상공간을 창출했다.

셋째, 정부는 북한과 9·19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에서 실질적인 군사위협을 제거해왔다. 동 합의서에서 남북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GP)를 철수하고 판문점을 비무장화하는 등 종전선언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다만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미 간 양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톱다운 협상의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했으며, 강력한 대북 제재하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딜레마 상황 역시 숙제로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 한반도의 시계는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이 가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 이 인내의 시간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 전략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미의 시·공간이 중첩되는 순간을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의 첫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신경질적인 도발에 한·미 양국은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을 지지한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소 거친 샅바 싸움과 유화 제스처 속에 협상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한반도의 운명을 건 본게임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정일영 | IBK기업은행 북한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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