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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 중 한국과의 교역규모가 가장 큰 베트남은 오래전 이 나라에서 있었던 전쟁에 우리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관계가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베트남 파병 문제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을 기피했으나 일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야를 국제사회로 돌리면 베트남전쟁은 당시 전쟁 당사국이었던 미국의 젊은층과 지성인들로부터 비난받던 ‘더러운 전쟁’이었음이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3월22일 (출처:경향신문DB)

우리 정부는 지난해 아세안 정책의 기조가 사람(people), 평화(peace), 번영(prosperity)이라고 천명했다. 이러한 3P 외교이념은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문재인 정부는 박정희 정부의 베트남전쟁 관여와 이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을 가해한 부분에 대해 보다 분명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러나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현지에서 한국인들의 인권침해는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동남아 곳곳에서 한국인 기업들이 노동기본권을 무시하거나 현지 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개발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3P 이념에 외교적 수사가 아닌 진정성을 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동남아에서 혹여 근시안적 국익 개념에 사로잡힌 ‘경제동물’의 국가 이미지를 주고 있지 않나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인정하고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흐지부지했던 역대 정부의 외교를 답습해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가 공언한 민간부문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공공외교, 국민외교가 실행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 비해 아세안은 냉전 시기부터 자주외교의 역량이 우리보다 앞서 있었다. 그러기에 이들과의 협력은 기존 의존외교로부터 자립화를 꾀하면서 외교 다변화, 균형외교를 강화해나가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세안은 미국 등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립되어 있던 ‘불량국가’ 미얀마를 가입시켜 ‘포용을 통한 변화’에 성공했고, 이제 미얀마는 정상국가의 대열에 들어섰다. 또 베트남과 라오스의 개혁·개방을 지원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했다. 여기에다 아세안의 대부분 회원국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우리와 감성외교를 나눌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또한 아세안 회원국들 모두 남북한 동시 수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재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아세안에 보다 많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상호간 비교우위 외교자원의 맞교환을 통한 이익균형 실현을 의미한다. 우리와 아세안이 공유하고 있는 이 모든 자산은 문재인 정부가 꿈꾸는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실현과도 직결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외교이념으로서 사람을 먼저 내세웠다는 것은 경제실용주의를 넘어서 외교대상 지역의 역사, 문화도 공유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이는 매년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동남아인들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다문화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베트남 순방이 이웃 동남아를 향한 사람중심 외교의 첫걸음이길 기대한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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