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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바보! 바보!’ 10여년 전, 방청석에서 서초동 417호 법정으로 들어서는 황우석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탄식했다. 대한민국의 영웅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과학자. 나의 책 <지민(知民)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의 상당 부분은 황우석 사태와 ‘황빠’ 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내가 깨달은 교훈은 여러 가지다. 첫째, 권력은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다. 황우석은 권력에 도취했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으며 ‘사이언스’ 논문 조작이라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둘째, ‘빠’(지지자)는 사라지기 쉽고, ‘까’(반대자)는 순식간에 늘어난다. 과학이 정당성을 상실할 때 지지할 이유는 사라지고 비판할 이유만 남게 된다. 셋째, 결과적으로 권력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8월10일 (출처: 경향신문DB)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계에 폭탄을 던졌다. 황우석 사태 당시 황우석과 함께 가장 큰 정치적, 과학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박기영 전 보좌관을 연 20조원의 연구·개발비를 관리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한 것이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악몽’이라고 절망했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웠다.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많은 교수들이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황우석 사태를 엄정하게 분석한 과학사학자 김근배는 그의 책 <황우석 신화와 대한민국 과학>에서 박기영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지적한다. 박기영은 정치적 과학자로 아무런 기여도 없이, 위조로 판명 난 황우석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황우석을 위해 연구비 증액, 생명윤리법 개정 시행, 최고과학자 선정 지원, 황금박쥐의 결성 등 거의 모든 일에 관여했다. 21세기 최악의 과학스캔들을 일으킨, 황우석과 공동책임을 지고 평생을 자숙하고 살아야 할 장본인을 문재인 정부는 연 예산 20조원을 관리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것이다.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일 오후 과천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온 박기영 본부장은 퇴근 이후 자진 사퇴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로 박기영씨가 자진사퇴한 일은 문재인 정부를 위해 무척 잘한 선택이다. 청와대는 과학기술계에 대해 무지했고 인사시스템에 문제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적폐의 상징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내가 10여년 전 깨달은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권력은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벌써부터 권력에 도취했고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박기영 임명이라는 악수를 두었다. 과학기술이 권력을 경계하는 이유는 후자가 전자의 합리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황우석 사태로 그토록 많던 ‘황빠’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황까’가 득세했다. 박기영 사태로 한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성실한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문빠’에서 ‘문까’로 돌아설 뻔했다.

권력은 왜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을까?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황우석은 왜 논문을 조작했을까? 최고권력 박근혜는 왜 최순실의 이권을 무리하게 챙겼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스스로 도취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한 경향이 있다. 권력을 움켜쥘수록 자신에게 덜 엄격하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판단착오를 일으키며 권력이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주요 이유이다.

반면 시민들은 똑똑하다. 박기영 사태에 반발한 것은 시민사회였다. 시민들은 권력의 불합리성, 곧 멍청함을 지적했고 여론에 밀려 박기영은 사퇴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정치엘리트들과 지식엘리트들은 서로 결탁하여 황우석 사태, 4대강 사태, 광우병 사태, 최순실 사태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권력과 거리가 있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권에 개입하지 않아 사건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적으며, 엘리트 의식이 없어 권력에 도취하는 경향이 적다. 따라서 내가 ‘지민(知民)’이라고 일컫는 똑똑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주체이다. 촛불시민에 의해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똑똑한’ 목소리를 경청하여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성공하길 바란다. 권력이 멍청해질 때 ‘빠’는 사라지고 ‘까’가 득세한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권력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바보! 바보! 바보!

김종영 | 경희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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