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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건너뛰고 세제개편안 등 주요 경제정책이 결정되는 ‘김동연 패싱’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일까.

우려하는 쪽은 청와대에 포진한 학자 출신 참모들과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경제 컨트롤타워를 흔들고 있다고 본다. 백면서생의 청와대 참모진과 표를 의식하는 장관들이 경제를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정부조직법 19조를 보면 “경제부총리는 경제정책에 관해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한다”고 규정돼 있다. 청와대·여당과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김동연 패싱이 정책 혼선에 따른 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시각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청와대와 여당, 목소리 큰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부총리 발목을 잡는다면 그냥 넘길 수 없다. 정부 대책에 끼지 않는 곳이 거의 없는 기재부의 위상 하락은 정책 일관성과 신뢰성 결여를 낳고 한국 경제의 심각한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50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그러나 일부 사례에서 나타난 김동연 패싱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소득세와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이 없을 것이란 김 부총리의 공식 언급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의해 뒤집힌 것은 애당초 김 부총리의 인식이 설득력을 갖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증세 없이 새 정부가 공약 이행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지출구조조정에 상당 부분 의존해 조달하려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 양극화 해소란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 여당 간 치열한 토론과 견제를 통해 부총리의 시각이 교정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고 본다. 이는 김 부총리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든 마찬가지다. 오히려 실세 부총리라고, 예산권을 갖고 있다고 부총리의 위세에 눌려 주변 견제가 사라지는 게 더 큰 문제다.

막강 부총리 시스템의 폐해는 과거 보수정부에서 입증됐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을 이끈 최경환 전 부총리는 실세 중 실세였다. 2014년 7월 취임한 그는 부동산 부양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 주택시장을 두고 “한겨울이 왔는데 여름옷을 입고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하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 규제를 걷어냈다. 금융위원회는 그의 위세에 고개를 숙였고 청와대와 여당,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다. 가계부채 문제도 최 전 부총리 재임 시절 악화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명박 정부 1기 경제팀을 이끈 강만수 전 부총리 역시 최 전 부총리 못지않은 실세였다. ‘강고집’으로 불릴 만큼 고집이 강한 그는 인위적 고환율 정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그가 교체되고 나서야 정부는 비로소 신뢰 위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든, 대통령의 신임에 기대든 실세 부총리로 평가받아도 정책 방향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폐해는 심각하다. 역대 정부에서 권위주의적 성향의 지도자들은 자기 말 잘 듣는 사람을 쓰고 힘을 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정책 효율성은 부총리가 강할 때 확보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칫 도그마일 수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 인사들이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생각에 추종하지 않는 관료들을 반개혁적이니, 수구세력이니 하면서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선 안된다. 아무리 훌륭하고 국민 지지를 받는 개혁안도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관료들의 몫이다. 문제가 있다면 싸움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소통과 토론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특성을 감안할 때 김동연 패싱은 앞으로 예산 국회 통과 과정 등에서 더 나타날 수 있다. 이럴 경우 청와대와 부총리 간, 당정 간에 활발한 소통이 전제된다면 ‘김동연 흔들기’ ‘경제 컨트롤타워 어디로 갔나’는 식으로 싸잡아 비판할 일은 아니다. 탄탄한 팀워크가 오히려 독주하는 1인보다 나을 수 있다. 주요 경제 현안이 있을 때 부총리를 포함해 청와대와 여당 인사들이 형식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김동연 패싱 논란을 잠재우려면 김 부총리의 개혁적 사고, 관료들이 개혁을 추동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청와대 참모진의 용관(用官) 능력, 정치인 출신 장관들의 부처 이기주의 극복 등 여러 요인들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동연 패싱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새 정부가 청와대 참모진과 부총리, 각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새로운 소통과 협력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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