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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고등학교의 따돌림 대책 하나를 소개하면, 우선 전체 학생들을 강당에 모은다. 그러고는 가해학생을 연단 중앙에 홀로 세운다. 그 다음 자아비판을 시킨다. 그리고 커튼 뒤에는 따돌림을 당한 학생이 있다. 자아비판의 대상이 된 학생은 자기가 한 행동을 얘기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만든다. 이것이 소위 영국이 대처하는 ‘왕따(bullying)’ 해결방법 중 하나이다.

문명국의 방법으로는 가혹하다고 느낄지 모르나 매가 필요할 때는 혹독하게 처벌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또 재발 방지 및 개선의 기회를 제공하고, 피해자에 대한 배려를 감안한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집체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에서 타인에게 가학적 공격성을 갖는 사람은 일종의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있다. 타인을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만족을 느끼는 일군의 젊은이들은 강제된 공간에서의 위계질서에 대해 누구보다도 좋아할 것이다. 그곳에서 일찍이 누려보지 못한 일종의 우월적 지위에서의 왜곡적 자기과시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받는 걸로 착각한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

윤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에서 12일 부대원들이 내부반에 모여 인권교육을 받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러한 길로 접어드는 과정은 한국의 교육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가해자들이 이러한 길로 접어든 데는 한국 교육제도의 탓이 크다.) 인성과 자연 그리고 진정한 인간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교육에서는 경쟁이 최고이고 최선이다. 그러다보니 무관심과 방관이 교실에 횡행하고, 사랑보다는 상대를 꺾고 이겨야 하니 미워하는 교육이 횡행한다.

군 병영 내에서 왕따와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병사들의 인간성은 입대 3~4년 전 이미 학교에서 획득되고. 또 이들은 교실에서 이미 버려진 존재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치약을 먹이고, 침을 핥게 하고, 살인적 구타를 하는 그들은 혹시 그동안 가해인권의 치외법권적 존엄성의 우산 속에서 성장하면서 이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감각하게 생활해 온 것은 아닐까 의심된다.

한편으로 이렇게 허술하고 내팽개쳐진 군부대에서 병사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요구하는 정부 또한 일종의 공범적 차원에서 문제해결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한국은 모병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아니다. 마치 강제된 자원봉사자들이 순수하고 선의의 의지로 봉사를 하러 갔는데 그곳에서 얻어맞고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엉터리가 어디 있는가. 우리 모두 한국적 의식의 정도와 수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리인구적, 정치외교적, 경제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국은 언제까지 시행착오만 할 것인지 안타깝다. 두 번 다시 이러한 헛된 희생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김진환 | 방송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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