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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평등과 공평의 차이를 설명하는 그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돌며 공감을 얻었다. 세 사람이 담 너머로 경기를 보려고 하는데, 키가 담 높이보다 큰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같은 높이의 받침대에 올라서니 두 사람은 경기를 관람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은 여전히 경기를 볼 수 없다. 받침대 없이도 경기를 볼 수 있는 사람 대신 키가 가장 작은 사람에게 받침대 두 개를 받쳐주니 비로소 세 사람 모두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 그림 하나로 많은 사람이 공평의 의미를 쉽게 받아들였다.

프랑스에서 친구가 위의 그림에 한 컷이 더해진 그림을 보내왔다. 키가 가장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밟고 올라서서 경기를 관람하고, 다른 이는 그가 마실 음료와 간식을 받쳐 들고 있었다. 프랑스 사회를 풍자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 그림을 보면서 씁쓸하게도 우리의 학교를 떠올렸다. 노동시간으로 따지자면 과로사 기준인 주당 60시간이 넘는 시간을 학습하며 경쟁하는 탓에, 이긴 사람이 혼자 독식하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성적이든 일자리든 너무나 힘들게 얻은 성과라 진 사람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다. 내가 낙오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하기 쉽다.

교육은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교육에 공평보다 공정이라는 잣대를 먼저 들이민다. 부모의 경제적 자산뿐 아니라 사회적 인맥과 문화적 소양이 이미 공정하지 않은데 말이다. 똑같이 가르쳐야 공정하고, 순위를 공정하게 정해 선발하는 것에만 집중하니 교육이 오히려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다. 개천에서 난 용은 개천을 돌보기는커녕 개천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고, 사교육 도움 없이는 용이 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 이런 차이를 메우려면 교육에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 이어 아카데미에서 수상했다. 영화는 부자에게 기생해야만 살 수 있는 충(벌레)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불합리하게 여겨 없앴다고 생각한 신분이 다시 부활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불평등 해소라는 사회적 요구를 낳고 있다. 

공평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많은 교육정책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안되었다. 하지만 제시된 해결방안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71개 교육시민단체가 4·15 총선을 앞두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우선 시행할 교육정책을 온라인 국민투표로 정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 투표로 정한 교육과제를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내밀어 21대 국회에서는 꼭 실행하도록 정책협약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코로나19 공포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한다. 온라인 국민투표를 홍보하기도 어렵다. 4·15 총선 교육공약 선정 온라인 국민투표는 http://edu415.net에서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교육공약 선정 홍보대사가 되어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한 한 걸음을 함께 내딛기를 요청한다.

<변춘희 | 교육단체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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