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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국민을 감시하는 권력인 ‘빅브러더’(Big brother)가 등장한다.

집, 거리, 직장 등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을 통해 빅브러더는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지켜본다. 조지 오웰의 다음 세대인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감시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시당하는 자는 신체와 정신을 통제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보면 소설 속의 빅브러더에게는 텔레스크린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다만, 국민이 가상의 텔레스크린을 의식해 스스로 감시의 속박에 매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 빅브러더 노릇을 한다고 해서 시끌벅적한 곳이 있다. 바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로 경마, 경륜, 카지노, 스포츠토토, 복권 등에 전자카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도박중독을 막기 위해 개인의 고유한 생체 정보인 손가락 혈관 정맥을 등록한 이용자에게만 전자카드를 발급하고, 현금 대신 전자카드만을 사용하라는 취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사행산업은 모두 국가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관련 법률에 따라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소관 부처에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도박이라는 것이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인간의 본능이므로, 근절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국가의 관리하에 놓고, 그 이익을 공공선(公共善)에 사용하자는 의도이다. 한국마사회만 하더라도, 소관부처인 농식품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 국회, 감사원 등 여러 국가기관에서 관리 중이다.

문제는 사행산업을 즐기고 있는, 혹은 즐기려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 도박중독자로 취급하겠다는 ‘감시’의 의도이다.

이용자가 아무리 건전한 레저 활동의 하나로 복권이나 스포츠토토를 구매하고 경마를 즐긴다 하더라도, 무조건 잠재적 도박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국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모든 이용자의 개인적 인권이나 자율적 결정권을 무시하고, ‘감시’의 대상에 올려놓겠다는 권력의 행정편의적 발상이 숨어 있다.

그것도 주민등록번호나 아이핀과 같은 가상의 숫자가 아니라, 개인의 생체 정보인 손가락 혈관 정맥으로 말이다. 마치 알코올중독을 막기 위해 모든 술집에 지문인식기를 설치하고, 인터넷 중독 예방을 위해 PC 사용자는 무조건 홍채 인식을 하라는 셈이다.

요즘은 유출된 개인정보가 단 하루면 지구 반대편으로 퍼져 보이스피싱과 같은 범죄에 악용될 정도여서 개인정보 보안에 민감하다.

보안이 생명인 은행과 카드회사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국가에서 개인의 고유한 생체 정보인 손가락 혈관 정맥을 강제로 수집하겠다고 하니, 소설 속 빅브러더의 텔레스크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행스럽게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6일 전체회의에서 전자카드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결정했다.

사감위의 ‘전자카드제’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제 사감위는 불법도박 시장의 빅브러더가 되어야 한다. 사감위의 2012년 통계 조사에 따르면, 국가에서 관리하는 합법 사행산업 규모가 19조원에 불과한데, 불법 도박시장은 4배인 75조원 규모라고 한다. 이 정도면 연간 12조원의 세수가 탈루되는 거대 규모의 지하경제이다. 요즘 화두로 떠오른 무상급식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전자카드가 도입되면, 개인정보 누출을 꺼리는 합법 사행산업 이용자가 불법 도박시장으로 유입될 것이 분명하다. 사감위는 음지에서 활개치고 있는 불법 도박시장 단속에 먼저 나서주기를 바란다.


장경민 | 한국마사회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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