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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개신교인들의 종교적 주장에 정치인들이 순응하면서 성소수자보호제도들이 폐기되고 있다. 1997년부터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가 교계의 반대로 폐기된 후 2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 11월 말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민인권헌장마저 폐기하였다. 첫 제정회의에서의 재적 과반수 논란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서울시가 재투표 없이 헌장초안을 폐기한 이유는 그 초안에 성적지향차별금지조항이 담겨있고 개신교계 일부가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한달 후인 2014년 12월 말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성소수자청소년상담지원센터 설립을 거부하였다. 당시 성북구 주민참여예산사업은 10개 총 36억원으로 액수로는 서울시에서 가장 많았다. 성북구청장은 나머지 9개는 모두 그대로 이행하였지만 단 성소수자 관련 사업만은 이행을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성북구청장도 인정한 대로 역시 구내 개신교계 일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박 시장과 김 구청장의 행위는 위헌이다. 첫째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고 있다. 소수자들 중에서 오직 성소수자를 보호 대상이나 수혜 대상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하자가 없는 사업들을 폐기한 행위는, 특혜 부여를 안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제약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주민들은 주민발의제도를 통해 “정부는 동성애자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는 주헌법조항을 통과시켰다. 미연방대법원은 1996년 로머 대 에번스 판결에서, 이 주헌법이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침해하여 연방헌법을 위반하므로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주정부는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위 수정헌법은 단지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지 못하도록 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서울시민인권헌장 때 개신교계의 입장과도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 헌법조항 하에서는 이성애자들은 자신들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을 제정할 수 있지만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는 비슷한 법을 제정할 수 없다”면서 동성애자들을 정치적 참여권에 있어서 차별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물론 서울시와 성북구가 ‘동성애 보호법은 금지한다’라는 법을 통과시킨 것은 아니지만 위의 시장과 구청장의 행위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차별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하는 본성이며 자유는 사실 자유롭게 차별할 자유를 뜻한다.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통진당을 찍을지 새누리당을 찍을지,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식당, 극장 같은 대중시설, 고용이나 주거 등 최소 생필품 그리고 정치적 자유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이 인정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세계적 합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런 내용으로 차별금지법들을 제정했다. 호남사람이 “개인적으로” 싫다고 해서 고용 시 차별할 자유는 없다.

동성애 처벌 군형법 폐지 기자회견 (출처 : 경향DB)


둘째 정교분리의 원칙에 반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두 지자체장의 행위는 전적으로 아무런 이유없이 개신교계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며, 개신교계가 성소수자차별금지조항을 반대하는 유일한 이유는 종교적인 것이다. 수천년 전 개신교 스스로가 겪은 엄청난 핍박 때문에 원천적으로 종교와 공권력을 분리하려 한 이 원리에 따르면, 이번처럼 소수자보호를 위한 공적 자원과 절차의 분배 및 운용에 있어서 종교적인 이유가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개신교계의 목소리를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계의 입장 중에서 비종교적인 것들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는 종교적인 것들은 거부해야 정교분리 원칙에 부합한다.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믿음은 성경 구절 외에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다. 사실 무신론도 종교인 것처럼, 동성애가 죄악이 아니라는 믿음도 그것이 죄악이라는 믿음만큼이나 심원한 신앙이다. 동성애자들을 이렇게 종교적인 이유로 차등 대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종교적 탄압이다.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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