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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분명히 사회적 대화는 주요 노동공약이기는 하지만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와 의중이 서로 다르기에 가장 추진이 어려운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 중심 고용정책 강화, 노동존중 사회의 기세에 눌린 사용자 측들은 굳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장에서 또 버거운 책임을 질까봐 소극적이고, 대선 공약 마련 과정 참여와 이후 정책연합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은 노조들은 추가적인 소득이 불분명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나 미조직 노동자들의 문제에서 입장도 정리되지 않았기에 사회적 대화를 재촉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민주노총은 이전부터 사회적 대화에 대한 원론적인 거부 정서가 강하다.

그러나 소득 양극화나 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조직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90%의 노동자들을 포용하기 위한 시대적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배제하고 정부와의 직거래만으로 달성되기 힘들다. 재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시장과의 조화도 찾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복합적 해법이 필요하고 이런 해법은 당사자들 간 숙성을 거친 타협점을 찾아야 법개정으로도 갈 수 있다.

사회적 대화의 장에 노사를 불러내고 진지하게 논의를 이끌기 위해서는 논의구조나 참여 방식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제 선택이다. 의미도 있고 흥미도 있는 의제를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사회 통합을 위한 의미는 있더라도 노사의 속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대화는 겉돌기 쉽다. 당사자들에게 민감한 이해관계들의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더라도 사회적 의미가 별로 없다면 야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중심 의제로 산별 교섭의 구축을 제안한다. 기업 단위 교섭과 대기업 이기주의로 인해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되면서 초기업단위 산별 교섭의 필요성은 노조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병원, 자동차 업종 등에서 산별 교섭을 해본 사용자들은 산별 교섭이 2차, 3차 기업별 교섭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대체로 산별 교섭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기업마다 기본급 구조가 다른데 임금인상률을 산업별로 일괄 적용하기에는 난점도 많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가 해야 될 숙제이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호봉제 개선과 직무급 도입 시도를 산업별 교섭에서 추진한다면 어떨까. 노조는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이라는 대의를 저버릴 수 있는 기업별 교섭의 한계를 넘을 수 있고, 또한 직무의 시장가치별로 공정하면서도 합리적인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면 기업들도 효율적인 교섭이라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별로 직종과 그 밑의 직무별 시장 평균임금을 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한 임금차이를 설정한 다음 노동자들의 경력과 숙련을 더하고 학력이나 자격 등 능력요소를 일부 반영한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심한 격차를 효과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산별 임금교섭 체계를 완성한다면 이후에는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공정한 처우개선의 기준으로 이를 원용하거나 법적으로 효력을 확장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일한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저임금 계층의 임금수준을 위로 견인하는 과부하를 덜어주어 보다 촘촘하고 튼튼한 노동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기업들은 기업별 호봉제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산업별 교섭체계의 장점을 다시 인식해보고 노조는 직무중심의 임금체계를 통한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실천이라는 노동운동의 연대 의지를 가지고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노사에만 흥미 있는 의제는 아니고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소득 양극화를 해소해 보려는 국민과 사회적 열망을 노사가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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